나이를 먹으면서 이제는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이름들이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 같아요.

얼마 전 트로트 가수 송대관씨나 뽀빠이 이상용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는데, 오늘은 전유성 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네요.

전유성씨 특유의 느리고 드라이한 농담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네요. 1949년생이시니까 76이신데...

제가 아는 50년대생이신 분들은 젊고 정정한 기억들이 대부분인데 이제는 그분들이 70대를 넘기시고 계시네요.

그래고 70대 중반이면 요즘은 정정하게 지내는 분들도 많은데, 역시 건강 관리가 조금만 어긋나면 인생이 참 빠르게 끝나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워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유성 씨는 한국 코미디의 판을 새롭게 열었던 개척자라고 하죠. 처음으로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한국 코미디의 위상을 올렸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1호 개그맨', '개그맨의 조상' 같은 별명도 붙었던 것 같아요.

웃음을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낸 인물이었으니 그런 평가를 받는 게 당연하네요.


또 전유성 씨는 개그맨 생활 초기에는 영화사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로도 활동했는데, 업계에서 실력으로 꽤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회자되는 카피가 있는데요, 영화 '부시맨'의 "하늘에서 콜라병 하나가 떨어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라는 카피나, 호러영화 '헬 나이트'의 "당신이 우리나라 최초의 심야극장 관객이 되십시오"라는 문구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웃음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문장을 만들어낸 사람이었죠.

당시 무대를 생각해 보면, 1920~40년대에 태어난 구세대 악극단 출신 코미디언들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었는데, 전유성 씨와 고영수, 김병조, 임성훈 같은 1950년 전후 세대들이 '개그맨'이라고 불렸다고 하죠.

 전유성 씨는 텔레비전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도 특징인 것 같아요. 스스로 TV 출연을 꺼려하기도 했고, 또 말보다는 글로 웃기는 데 더 능했던 분이라 그런 것 같네요.

게다가 그의 개그는 '슬로우 개그'라서 한 번쯤 곱씹어야 웃음이 터지는데, 텔레비전은 워낙 빠르게 진행되니까 그런 개그가 빛을 발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그는 늘 무대 한쪽에서 조용히, 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우리 삶의 배경에는 늘 전유성 씨 같은 분들이 만들어낸 웃음이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이 TV 앞에 모여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던 시절, 그 따뜻했던 웃음 속에 전유성 씨의 이름이 스며 있었던 거죠.

이제 그런 이름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니, 나도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게 새삼 실감되네요.

오늘 전유성 씨의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언젠가 누군가 나를 떠올리며 "그 사람 덕분에 웃을 수 있었어"라고 말해준다면, 그게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