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의 숨결이 아직도 고스란히 살아 있는 도시 와이오밍 주 샤이엔.

나는 이곳에서 필리핀계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내가 나갈만한 한인 모임도 없고, 한국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마트도 샤이엔에는 없다.

고추장, 김치, 쌀, 라면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대부분 덴버까지 2시간 넘게 운전해 가서 장을 본다.

평소에는 미국 마트에서 대체 식재료로 요리를 해 먹으며 버티다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덴버 원정을 가는 식이다.

흔히 말하는 외로움의 조건은 다 갖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이곳의 삶은 고립보다는 몰입에 가깝다.

조용하고 단순하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내 인생이라는 실감이 난다.

샤이엔은 인구 6만 명 남짓한 작은 도시다.

고층 빌딩 대신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하늘이 일상의 배경이고, 여름이면 프런티어 데이즈 축제가 도시를 뒤덮는다.

카우보이 모자 쓴 사람들이 말을 몰고 퍼레이드를 하고, 먼지바람 속에서 음악과 함성이 섞인다. 이 도시에서 한국말을 하루 종일 한 마디도 듣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이웃과 나누는 대화는 늘 비슷하다. 오늘 바람이 유난히 거세다거나, 눈이 또 얼마나 내릴 것 같냐는 이야기들이다.

이곳에는 누가 얼마짜리 차를 샀는지, 누구 아이가 어느 대학에 갔는지 묻고 따지는 소음이 없다. 그런 이야기들은 와이오밍의 바람이 다 쓸어 가 버린 듯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 동네에 사는 한국인 남자로 받아들여진다. 그 단순함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불편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쌀 한 포대, 고추장 하나 사려면 몇 시간을 달려 콜로라도 덴버까지 가야 하고, 김치찌개가 간절한 날엔 냉장고를 열어 한숨부터 나온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감동을 받아도, 그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결핍이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사 먹던 김치는 이제 직접 담근다. 고춧가루와 마늘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고, 손에 양념이 잔뜩 묻은 채로 배추를 버무리다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의식 같다. 만두도 마찬가지다. 냉동 만두를 집어 들던 대신 밀가루를 반죽하고 속을 만들며 한 개 한 개 빚는다. 귀찮지만 그 시간 동안 머릿속이 정리된다.

낯선 땅에서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 가며 얻은 이 독립감은, 와이오밍의 겨울바람처럼 차갑고도 단단하게 내 사람을 만들었다.

와이오밍의 바람은 거칠다. 겨울엔 살을 에듯 차갑고, 여름엔 태양이 등을 태울 듯 내리쬔다.

하지만 그 자연 속에서 나는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풍경의 일부처럼 제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밤이 되면 네온사인 대신 쏟아질 듯한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 그 고요 속에서 내 생각이 또렷해진다. 이곳에서의 삶은 서부 영화 같은 풍경 속에 한국인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긴 여행 같다.

조용한 이 삶이 지금의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바람 부는 샤이엔에서 나는 내 인생을 천천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