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엘파소를 이야기할 때 I-10 프리웨이를 빼놓고 이지역의 교통상황을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엘파소는 미국 남서부 텍사스의 멕시코 국경과 맞닿은 도시인데 지리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I-10 위에서 숨 쉬고 움직입니다. 다른 대도시들이 여러 개의 고속도로가 얽혀 있는 것과 달리, 엘파소는 I-10이 사실상 도시의 등뼈 역할을 합니다.

I-10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시작해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남부를 가로질러 플로리다 잭슨빌까지 이어지는 미국 남부의 대동맥입니다. 엘파소는 이 긴 동서축 프리웨이 위에서 서부와 중부, 멕시코 국경 무역이 만나는 관문입니다.

엘파소의 물류 창고, 공업 단지, 국경 교역 시설, 쇼핑몰, 주거 단지 대부분이 I-10을 따라 줄지어 배치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엘파소 사람들에게 I-10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일터와 집, 도시의 리듬을 이어주는 생명선입니다.

특이한 점은 엘파소에 I-10만큼 영향력 있는 다른 프리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휴스턴의 I-10, I-45, I-69 같은 복잡한 고속도로망이나, 댈러스의 I-20, I-30, I-35, I-635 같은 구조와는 전혀 다릅니다. 엘파소에는 북남으로 관통하는 I-10 외에 US-54, Loop 375, Loop 601 같은 순환 도로들이 있지만, 이들은 보조 역할에 가깝습니다. 도시 전체 교통의 70~80퍼센트 이상이 I-10에 의존합니다. 출퇴근, 화물, 군수 물자 이동까지 대부분 이 한 줄의 도로에 얹혀 있습니다.

이 구조가 엘파소의 도시 성격도 만들었습니다. 도시는 I-10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진 리본처럼 성장했고, 도심과 동부, 서부 지역이 전부 이 고속도로로 연결됩니다. 아침저녁으로 I-10이 막히면 엘파소 전체가 동시에 멈춘 듯한 분위기가 됩니다. 반대로 I-10 공사가 끝나거나 차선이 확장될 때마다 엘파소 경제는 곧바로 숨통이 트입니다.

부동산과 산업 역시 I-10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물류 회사, 창고, 제조 공장, 쇼핑 센터, 신규 주택 개발은 거의 예외 없이 I-10 접근성부터 따집니다. 엘파소에서 "I-10에서 몇 분 거리냐"는 집값과 상권의 기준선입니다. 다른 고속도로가 여러 갈래로 도시를 나누는 대도시와 달리, 엘파소는 I-10 하나로 모든 생활권이 정렬되는 매우 독특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엘파소와 I-10의 관계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라 도시의 성격 자체를 규정하는 관계입니다. 국경 무역 도시, 군사 물류 거점, 서남부 교차로라는 엘파소의 모든 정체성은 I-10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엘파소를 이해하려면 지도를 펼칠 필요도 없습니다. I-10을 따라 한 번 달려보면 이 도시가 왜 이 도로와 운명 공동체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