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공기가 한결 서늘해졌습니다. 출근 전에 동네 길을 한 바퀴 걷는데, 하얀 나무 울타리 너머로 말 몇 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막 걷히는 들판에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면, 말들의 등이 금빛으로 빛납니다. 이 풍경은 오래 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동네 분위기가 슬슬 달라집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 입에서도 킨랜드 이야기가 먼저 나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오늘은 이 도시가 왜 세계 말의 수도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10월 킨랜드 경마가 어떤 자리인지 정리해 보려 합니다.
우선 땅 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이 일대는 석회암 지반 위에 놓여 있고, 그 위로 블루그래스라 불리는 풀이 자랍니다.
현지에서는 석회암에서 녹아 나온 칼슘이 물과 풀에 스며들어 말의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고 흔히들 설명합니다. 이 고장 사람들이 땅 자랑을 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오래된 목장들의 역사가 더해졌습니다. 1867년에 세워진 러니미드 농장은 지금도 같은 가문이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1910년에 문을 연 클레이본 농장은 삼관마 세크리테리엇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합니다. 1924년에 세워진 캘류멧 농장은 켄터키 더비 우승마를 여덟 마리나 배출했습니다.
숫자만 들어도 놀랍지만, 이런 목장들이 아직도 현역으로 말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더 인상적입니다. 한 세기 넘게 같은 일을 이어간다는 건 보통 고집이 아니지요.
도시 북쪽의 켄터키 호스 파크도 이 별명에 힘을 보탭니다. 1978년에 문을 연 이곳은 실제로 말을 기르는 농장이자 국제 승마 대회장이고, 말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원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는 전설적인 경주마 맨오워가 잠들어 있습니다. 원래 다른 곳에 묻혀 있다가 1977년에 동상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맨오워는 영화로도 유명한 시비스킷의 할아버지인 말입니다. 동상 앞에 서 있으면 말 한 마리를 이렇게까지 기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싶어집니다.
이제 킨랜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킨랜드 협회는 1935년에 만들어졌고, 경마장은 1936년 10월 15일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부터 비영리 경마장으로 출발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수익을 내는 것보다 경마 문화를 지키는 데 무게를 두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올해 가을 시즌은 킨랜드가 개장 9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괜히 경마장 주변 공기가 더 들떠 보이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2003년 영화 시비스킷의 경주 장면 상당수도 이곳에서 찍었습니다. 오래된 석조 건물과 나무 그늘이 193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어서였다고 합니다.
올해 가을 시즌은 10월 2일 금요일에 개막해서 10월 24일 토요일까지 이어집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경주가 없으니 일정을 짤 때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기간 중 경주일은 모두 17일이고, 스테이크스 경주가 22개, 총 상금은 1070만 달러입니다. 개막 주말인 10월 2일부터 4일까지 그중 절반인 11개 스테이크스가 몰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달 말에는 더 큰 잔치가 기다립니다. 10월 30일과 31일 이틀간 브리더스컵 월드 챔피언십이 킨랜드에서 열립니다.
킨랜드가 브리더스컵을 개최하는 건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하루 4만2천 명의 관중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현지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주간에 이 근처 식당이나 숙소를 찾으실 분들은 서두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게를 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손님들이지만, 길이 막히는 건 각오해야 합니다.
저는 경마장에 갈 때 꼭 이른 아침을 고릅니다. 경주가 시작되기 전, 트랙 위로 말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말이 달리는 모습을 오래 보다 보면 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발이 땅을 차는 박자가 일정하고, 기수와 말이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추니까요.
댄스 플로어에서 파트너와 리듬을 맞출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를 믿고 몸을 맡길 때 비로소 동작이 가벼워집니다.
경마라고 하면 도박부터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물론 베팅 창구가 있지만, 실제로 가보면 가족 단위로 소풍 나온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뒤편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사람들, 정장에 모자까지 차려입은 노부부, 아이를 목마 태운 젊은 아빠까지 풍경이 참 다양합니다.
한인 이웃분들께도 한 번쯤은 꼭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돈을 걸지 않아도 가을 햇살 아래 말이 달리는 걸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저라면 개막 주말의 북적임은 조금 피하고, 평일 오후 시간대를 골라 느긋하게 다녀오겠습니다. 트랙 옆 나무 그늘이 그때 가장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목장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보시기 바랍니다. 해 질 무렵 들판 위로 번지는 금빛 구름이 이 계절 이 땅의 진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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