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내가 어릴 때 우리에게 '무협'은 단순한 장르가 아니었다.

그건 남자의 본능에 가까운 환상이었다.

TV에서 홍콩 무협영화가 나오면 배우들이 양손으로 장풍을 날리고, 와이어에 매달려 하늘을 날아다닐 때, 나는 빗자루를 "내가 무당파 제자다!"를 외치며 뛰어다녔다.

그 시절엔 내공이니 절정고수니 하는 말들이 입에 붙어 있었고, 의천도룡기나 동방불패에 나오는 '무림지존' 말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졌었다.

그런데 그 감성이 지금 다시 돌아왔다. 바로 '무협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무협이 이제는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무협의 원조격인 중국과 비교해보자면 차이점은 분명하다. 중국 무협은 도가사상, 정통성, 의리 같은 전통적 가치 위에 짜인 '강호' 세계관이 뼈대다.

김용, 고룡, 양우생 같은 거장들이 무림의 질서를 정의하고, 주인공은 도를 닦으며 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반면 한국 무협은 좀 더 땀 냄새 난다. 80~90년대 무협소설은 "이기는 놈이 짱"이라는 생존주의에 기반했다.

황성, 야설록, 사마달 등 쟁쟁한 작가들은 정의도 중요하지만 살아남는 게 먼저라는 현실감 넘치는 무림을 그렸다.

강호라기보단 그냥 '살아남는것이 목표인 서바이벌 시장통'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요즘 무협 웹툰은 단순히 칼만 휘두르지 않는다.

회귀, 성장, 복수, 게임 시스템, 작화 연출의 미장센까지 다 때려 넣은 하이브리드 콘텐츠로 진화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주인공이 기억을 지닌 채 과거로 돌아가 복수극을 펼치고, 퀘스트를 수행하며 레벨업하고, 한 장 한 장 터지는 액션 연출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회귀한 폐급이 알고 보니 천재'라는 클리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본인의 인생도 리셋하고 싶게 만든다. 덕분에 이 장르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 콘텐츠가 되었다.

그 중심에 있는 작품이 바로 '화산귀환'이다.

2019년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한 웹소설 '화산귀환'은 무려 1449편!

누적 다운로드 4억 9천만 뷰, 그리고 매출 4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화산귀환' 소설은 웹툰으로도 재탄생하면서 해외 팬층까지 확보했다고 한다.

본래 강호의 멸망 직전에서 회귀한 주인공이 폐쇄된 문파 '화산파'를 다시 일으킨다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무림재건이 아니라 웃기고 감동적이고 시원한 전개가 매력이다. 이걸 웹툰으로 옮긴 후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화산귀환' 외에도 '나 혼자만 레벨업', '광마회귀', '아비무쌍', 전독시', '나노마신', '천마육성기' 같은 작품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 중이다.

특히 '나 혼자만 레벨업'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일본에서 방영되었고, 넷플릭스 진출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 유럽, 동남아권에서도 번역된 무협 웹툰은 점점 인지도를 높이며 K-무협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무협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한국 무협을 어떻게 바라볼까?

처음엔 당연히 삐딱한 시선이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창작력, 연출, 연재 속도, 독자와의 호흡 등에서 한국 웹툰 산업이 앞선다는 점을 인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실제로 중국 내 플랫폼에서도 한류 무협이 따로 분류되어 소개되는 경우도 생겼다. 콘텐츠의 질과 감성, 캐릭터 서사에서 한국 무협이 '다르게' 그리고 '세련되게' 진화했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일본은 조금 다르다.

일본은 닌자, 사무라이, 요괴 같은 자국 전통 장르가 이미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년만화'라는 초강력 장르가 있다. '드래곤볼', '나루토', '원피스'처럼 이미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 IP가 있기 때문에, 굳이 외래 장르인 무협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또 일본 독자층은 무협 특유의 문파, 정파 같은 '조직 중심 서사'보다는 개인 내면의 성장과 심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한국 무협의 사이다 전개와는 결이 다소 다르다.

결국 한국 무협은 중국의 형식을 가져오되, 한국식 감성과 전개로 재해석하고, 일본식 연출력을 참고하되, 그보다 더 빠르고 직설적으로 진화한 콘텐츠가 된 셈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전 세계에서 한국 무협 웹툰을 즐기는 수백만 명의 독자와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여전히 강호가 있다.회귀한 광마도 있고, 복수귀도 있고, 그리고 쌍칼 들고 돌아온 전직 폐급도 있다.

무협은 죽지 않았다. 다만 웹툰이라는 새 옷을 입고, 다시 우리의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음 회차 결제를 해야했다.

왜냐고? 웹툰 작가가 항상 기가막힌 타이밍에 내용을 끊고 끝내기 때문이다...

1주 기다리면 무료로 나오게 되지만 결국 다음주까지 못기다리고 결제하게 된다.

뭐 어쩌겠는가, 궁금하면 돈으로 해결해야지 ㅎㅎ

계속 한국 웹툰이 성장해서 글로벌 에니메이션 컨텐츠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