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설렌다는 게, 내 나이 들어서도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65살. 이제 체력도 예전 같진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조심스러워진 시기지만... 그만큼 더 깊이 보고, 느끼게 되는 것들도 있어요.
이탈리아, 로마 얼마나 가슴 설레이던지..... 이번 로마 여행이 딱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이 로마라고 하면 콜로세움, 바티칸, 판테온을 먼저 떠올리죠.
그것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장소는 따로 있어요.
바로 천사성(Castel Sant'Angelo)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둥그런 요새.
테베레 강 옆을 따라 걷다가 마주한 천사성은, 처음엔 솔직히 그냥 묵직한 돌탑처럼 보였어요.
성당도 아니고 궁전도 아니고, 딱히 화려하지도 않은데... 묘하게 시선을 끌더군요.
이 건물이 원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무덤이었다니요.
서기 135년경에 시작된 이 건물의 역사는, 말 그대로 2천 년 가까운 세월을 품고 있었어요.
무덤이었다가 요새가 되고, 감옥이 되고, 교황의 도망처가 되고 수많은 역할을 해왔더라고요.
딱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참 많은 역할을 하며 살아왔구나."
어릴 땐 누군가의 딸, 결혼하고는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 그리고 지금은 손주의 외할머니...
천사성을 바라보며, 그 변신이 꼭 남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천사성이란 이름의 유래도 참 흥미로웠어요.
590년, 로마에 흑사병이 돌던 때 교황이기도하던 중 성 꼭대기에서 칼을 칼집에 넣고 있는 천사 미카엘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걸 본 교황이 "이제 전염병이 끝날 징조다"라고 믿었고, 실제로 상황이 나아졌다고 해요.
그 천사 동상이 지금도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데요, 직접 올라가서 보니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리게 되더군요.
"부디 우리 아이들, 손주 세대엔 고통보다 평화가 더 많은 세상이 되길."
천사성과 바티칸은 사실 은근히 가까워요.
그 사이를 연결하는 비밀 통로, 파세토 디 보르고(Passetto di Borgo)라는 게 있대요.
전쟁이나 반란이 일어나면, 교황이 몰래 이 길을 통해 천사성으로 피신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그 통로 일부는 지금도 볼 수 있어요. 다빈치 코드 영화에 나올 법한 분위기랄까...
나이 들고 나면 이런 스토리 하나하나가 훨씬 더 가슴에 와닿아요.
숨기고, 피하고, 지키고—그건 꼭 교황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천사성 내부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돼요. 고대 무기, 중세 감옥, 교황들의 방, 화려한 천장화들까지...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고대 로마와 중세 교황청의 권위가 어떻게 공존했는지 느껴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이 건물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숨이 멎을 뻔했습니다.
성베드로 대성당, 테베레 강, 그리고 그 위를 흐르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그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문득 "이 많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은 계속 오고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천사성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어요.
무덤, 요새, 감옥, 궁전, 박물관, 이 모든 역할을 지나온 이 건물은 "내가 살아온 인생도 그렇게 의미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남편하고 또 찾아가, 다시 여행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로마는 그런 도시니까요. 돌 속에도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