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도시의 변화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게 바로 저의10대 후반을 함께했던 시트콤 The Fresh Prince of Bel-Air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윌 스미스를 아카데미 시상식 크리스 락 뺨을 때린 배우로 먼저 떠올리겠지만, 제 세대에게 그는 처음부터 '할리우드 대스타'가 아니었습니다.

그당시 윌 스미스는 소파에 앉아 큰 소리로 웃게 만들고 가끔은 짠하게 했던 필라델피아에서 온 청년 윌리엄 스미스였죠.

제가 처음 이 시트콤을 봤을 때가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방영 첫 회가 1990년 9월 10일이었으니 정확히 기억하진 않더라도 학교에서 돌아와 TV 앞에 앉아 있던 그 감각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오프닝 노래는 "Now, this is a story all about how~" 라고 시작되는 랩이 시작되면 부모님도 피식 웃고, 남동생은 윌처럼 따라 춤을 추고. 그 당시 우리 집은 넉넉하지도 않았고 평범한 이스트 필라델피아의 가정이었는데, 그 덕분인지 윌이 겪는 필라델피아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벨 에어에서 부유한 친척들과 어색한 생활을 시작하는 장면이 묘하게 남의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설정이 정말 현실과 맞닿아 있었어요. 윌은 서부 필라델피아에서 뛰어놀던 평범한 흑인 청년이었습니다. 농구하다가 불량배들과 엮이고 결국 위험해지자 엄마가 그를 부촌 벨 에어로 보내죠. 그 거리가 약 4,300km나 떨어져 있다지만 그당시 필리와 엘에이 헐리우드쪽 체감문화 거리는 수십만 km라고 해도 될 만큼 멀었습니다.


벨 에어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었고 거기서 만난 이모부는 성공한 변호사, 사촌들은 윌이 생각하는 '흑인다운 모습'과 전혀 다른 스타일. 이게 잘 먹힌 드라마 입니다. 동부 출신과 서부 출신 사촌사이는 어색하고 충돌도 많았죠.

당시 TV에서 중상층 이상의 부유한 흑인 가족을 다루는 시트콤이 코스비 쇼(The Cosby Show) 이후에는 없었던 만큼, 그 모습 자체가 신선했고, 평범한 흑인 가정에게 묘한 자극과 신선한 충격을 줬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단순히 부자와 빈자의 대비만을 다뤘던 건 아니었어요. 겉으로는 웃음 한가득 주는 시트콤이었지만, 그 속엔 흑인 사회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녹아 있었죠. 차별, 정체성, 세대 차이, 경제적 기회 같은 이야기들. 윌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 뒤에는 늘 그런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숨어 있었고, 그게 어린 우리에게도 묘하게 전달됐습니다. 별생각 없이 웃고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꽤 교육적인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배웠던 셈이죠.

특히 윌과 사촌 칼튼의 차이는 정말 상징적이었습니다. 거리 문화에 익숙한 윌과, 보수적이고 모범생 스타일의 칼튼. 둘이 부딪치면서도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는 모습은,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하던 저 같은 10대에게 큰 영향을 남겼어요. "흑인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단정된 틀을 뒤집는 이야기였고, 각자의 길과 배경이 다르면서도 결국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돌아보면 이 드라마는 제게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의미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살아온 50세 남자가 TV 속을 통해 경험했던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였고, 그 안에서 웃고, 공감하고, 때로는 상상하던 미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유튜브에서 오프닝을 들으면, 그 멜로디 하나에 어린 시절의 필라델피아 공기가 그대로 되살아나는 느낌이 드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