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별다른 계획도, 특별한 약속도 없는 주말이었다.

아침부터 햇살이 거실 바닥을 길게 드리우고, 창밖에서는 바람이 살짝 불어 커튼이 나풀거렸다.

이런 날은 괜히 집 안이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오후가 되자 문득 녹두 생각이 났다, ok 오늘은 빈대떡을 부치는 날로 하자.

어릴 적 우리 집에서 빈대떡은 작은 잔치 같은 음식이었다.

명절이면 엄마가 대야에 가득 녹두를 불려놓고, 김치, 파, 숙주, 돼지고기를 한가득 준비하셨다.

부엌 한쪽에선 기름이 지글거리고, 부침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나는 부치자마자 나오는 빈대떡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호호 불며 한입에 베어 물었다. 그 뜨끈함과 고소함은 어린 시절의 행복한 맛이었다.

오늘은 엄마처럼 정성껏 준비했다. 녹두를 전날 미리 불려 곱게 갈고, 소금 한 꼬집 넣어 반죽을 했다.

김치는 잘게 썰어 물기를 꼭 짰고, 대파도 송송 썰어 넣었다. 숙주나 고기를 넣으면 더 진한 맛이 나지만 김치와 파만으로 담백하게 가기로 했다.

후라이팬을 달궈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한 국자씩 떠서 올렸다.

순간 '지이익' 하는 소리가 부엌을 가득 메운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한쪽 면이 노릇해지면 조심스레 뒤집는다. 기름과 반죽이 만나 내는 고소한 향, 부드럽게 스며드는 김치 향... 부엌이 따뜻하게 달아오른다.

빈대떡이 부쳐지는 동안, 문득 머릿속에 한 노래가 스쳤다.

"돈이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어릴 때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옛날노래 ㅋㅋ

가사는 단순했지만, 묘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화려한 외식이나 멋진 여행이 아니어도 집에서 빈대떡 부쳐 먹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는 뜻 아닐까.

접시에 차곡차곡 쌓이는 빈대떡을 보니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갓 부친 빈대떡을 하나 집어 들고, 가장자리 바삭한 부분을 뜯어 먹는다.

바삭함과 촉촉함이 한입에 어우러지는 순간, '아... 이게 바로 행복이지' 싶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빈대떡 위에 살짝 비치고, 집 안은 기름 냄새와 웃음으로 가득하다.

저녁 무렵, 가족이 둘러앉아 막 부쳐낸 빈대떡을 집어 먹는다.

"역시 엄마 손맛이야"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부침 냄새가 배어 있는 앞치마가 조금도 귀찮지 않다.

결국 음식은 배를 채우는 걸 넘어서 마음을 채운다. 빈대떡을 부치는 시간은 나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뜻한 다리다.

어린 시절 부엌 풍경이 지금 내 부엌에서 되살아나고, 소소한 행복이 오늘 하루를 더 빛나게 만든다.

삶도 빈대떡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조화를 이루면 참 맛있어진다.

오늘의 결론?

돈이 있든 없든, 행복은 이렇게 부엌에서 지글거리는 빈대떡 한 장에도 충분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한 장이, 나를 하루 종일 웃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