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하는 습관 중에서 유독 문화적 의미가 강하게 얽힌 것 중 하나가 바로 ‘저녁 식사’입니다.
미국에서는 해가 지기도 전에 저녁을 먹는 것이 보통이고, 이탈리아에서는 해가 완전히 진 뒤 식탁을 차리죠.
스페인에서는 밤 9시, 10시 이후가 되어서야 식사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저녁이 하루의 마무리를 의미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작은 파티의 시작일 수 있죠.
그렇다면, 문화적 의미를 잠시 내려놓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볼까요?
“건강을 위해서 저녁은 언제 먹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히 복합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노화 연구자인 발터 롱고 박사는 “잠자리에 들기 최소 3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몸이 낮과 밤의 주기를 따르며 활동하는 생체 리듬, 즉 ‘서카디안 리듬’에 맞춰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게 되면 몸은 여전히 ‘활동 중’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수면의 질이 저하되고 신진대사 또한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취침 시간이 자정이라면 밤 9시 전까지 식사를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죠.
이것은 단지 잠을 잘 자기 위한 팁만은 아닙니다. 우리 몸은 음식을 섭취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대사 작용이 다르게 일어납니다.
식후에는 탄수화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일정 시간 동안 단식을 하게 되면 우리 몸은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해 사용하는 ‘지방 산화’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영국 서리대학교의 애덤 콜린스 부교수는 이를 “시간 제한 식사(time-restricted eating)”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간헐적 단식의 한 형태인데요, 하루 중 식사를 하는 시간을 12시간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야간 단식 시간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 방식은 체중 관리뿐만 아니라 인슐린 민감성 개선, 지방 대사 촉진 등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건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침을 늦게 먹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저녁을 일찍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요? 콜린스 박사는 “하루 중 이른 시간대에 칼로리를 집중하는 것이 대사 건강에 더 유익하다는 증거가 많다”고 말합니다.
아침 시간대는 신체가 가장 활발히 소화와 대사를 준비하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아침과 점심에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저녁은 가볍게 마무리하는 식사 패턴이 건강에 이롭다는 것이죠.
한편, 롱고 박사는 장수한 사람들의 식습관을 관찰한 결과, 공통적으로 ‘가벼운 저녁’을 선호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저녁 식사 후 12시간 이상을 공복 상태로 유지하고, 아침은 빠뜨리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식사량이 저녁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죠.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라.”
이 조언이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저녁을 언제 먹는 게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언제 자는가' 그리고'내 몸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본인의 신체 리듬에 맞춰 일찍 식사를 마치고, 하루의 에너지를 낮 시간에 집중시키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 혹시 너무 늦지 않게 드실 계획이신가요?
가볍고 일찍, 그리고 여유롭게. 그것이 몸과 마음 모두를 위한 저녁의 공식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