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10월 17일 오후 5시 4분,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파크는 월드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들떠 있었습니다. 관중석은 꽉 찼고, 경기 시작까지는 30분 남짓 남은 시간이었죠.
그해 월드시리즈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같은 베이 지역 두 팀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베이 브리지 시리즈라고 불렀어요.
ABC 중계석에는 알 마이클스와 팀 매카버가 앉아 있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4분쯤 지났을 때 화면이 덜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클스가 지진이 났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전파를 탔고, 곧 화면이 끊겼습니다. 큰 지진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묘한 장면이에요. 야구 보려고 TV를 켠 사람들이 한순간에 재난 현장을 지켜보는 목격자가 돼버린 거니까요.
이 지진은 진앙이 산타크루즈 산맥의 로마 프리에타 봉우리 근처라서 로마 프리에타 지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규모는 6.9였고, 샌안드레아스 단층 계열에서 일어났습니다.
흔들린 시간은 15초 남짓이었다고 해요. 그 짧은 시간에 베이 지역 곳곳에서 도로와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공식 집계로 사망자는 63명, 부상자는 3,757명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덤덤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망자 가운데 42명이 오클랜드 880번 고속도로의 사이프러스 구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위아래 2층으로 된 고가도로의 윗층이 아래층 차들 위로 그대로 내려앉은 겁니다.
하필 퇴근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길 위에 있던 사람들은 집에 가서 야구 보려던 평범한 이웃들이었을 거예요.
USGS 자료를 보면 무너진 구간은 부드러운 진흙 위에 흙을 메워 다진 땅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옆 단단한 모래, 자갈 지반 구간보다 땅이 훨씬 세게 흔들렸다는 계측 결과도 나왔고요.
같은 지진인데 어느 땅 위에 서 있었느냐가 생사를 갈랐다는 얘기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한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 브리지도 동쪽 구간 상판 일부가 내려앉았습니다. 다리는 한 달 가까이 막혔고, 출퇴근하던 사람들은 먼 길을 돌아야 했죠.
샌프란시스코 마리나 디스트릭트에서는 건물이 기울고 불길까지 치솟았습니다. 여기도 매립지 위에 지어진 동네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캔들스틱 파크는 흔들리기만 했지 버텨냈습니다. 수만 명이 모여 있던 경기장이 무사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입니다. 관중들은 차분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갔다고 전해집니다.
3차전은 그대로 연기됐습니다. 시리즈는 열흘 뒤인 10월 27일에야 다시 열렸어요.
결과는 애슬레틱스의 4연승 스윕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 우승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건 트로피가 아니라 뚝 끊겨버린 중계 화면이었으니까요. 스포츠 역사에서 이렇게 경기 내용이 통째로 잊힌 시리즈도 드뭅니다.
제가 이 지진에서 더 흥미롭게 보는 건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재난이 도시의 모양 자체를 바꿔놓았거든요.
샌프란시스코 바닷가를 가로막던 엠바카데로 고가도로가 이 지진으로 손상돼 폐쇄됐습니다. 원래 1959년에 개통된 도로였는데, 오래전부터 흉물이라는 소리를 듣던 곳이었죠.
다시 고쳐 쓰자는 쪽과 아예 허물자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당시 아트 아그노스 시장이 철거를 밀어붙였고, 시 수퍼바이저 위원회 표결은 6대 5였다고 합니다.
한 표 차이였던 겁니다. 그 한 표가 아니었으면 지금 페리 빌딩 앞 풍경은 완전히 달랐을 거예요.
철거는 1991년 2월에 시작됐습니다. 그 자리는 지금 산책로와 전차 선로, 공원이 들어선 시민들의 공간이 됐습니다.
저는 그 결정이 옳았다고 봅니다. 차가 빨리 지나가는 길보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바닷가가 도시를 훨씬 오래 살려주니까요.
지진 이후 캘리포니아는 고가도로와 다리의 내진 보강에 큰돈을 들였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말도 많았지만, 결국 그게 다음 세대를 지키는 일이었죠.
다만 그 변화가 공짜는 아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사이프러스 구간에서 희생된 분들 덕분에 무른 땅 위 구조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두가 알게 된 거니까요.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그날이 그렇게 평범하게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다들 퇴근하고 야구 볼 생각뿐이었어요.
베이 지역에 사신다면 이번 주말쯤 집에 비상용 물과 손전등, 상비약이 제대로 있는지 한번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거창할 필요 없이 가방 하나면 충분합니다.
사는 집이 매립지인지 단단한 지반인지도 한 번쯤 찾아보세요. 37년 전 그날이 우리한테 남겨준 숙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moonriver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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