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에 왔을 때만 해도 이곳이 이렇게 마음에 들어 머무르게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 서부 여행지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곳은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같은 큰 도시들이다. 그 사이에 껴 있는 유타(Utah)는 다소 조용하고, 종교적 이미지가 강하고, 볼거리가 사막과 바위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살아보니 이곳만의 매력이 의외로 깊다.

첫인상은 단순했다. 공기가 맑고 하늘이 과하게 파랗고, 도심 외곽만 나가도 눈 덮인 산맥이 바로 눈앞을 가득 채웠다. 산이 주거 환경을 감싸고 있으니 자연히 도시가 주는 분위기부터 차분하고 소박하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 도심조차 조용히 흘러간다.

지하철역을 나와도 사람들 발걸음이 느리고, 신호등 앞에서 클랙슨을 울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한국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도시, 굳이 부딪히며 경쟁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천천히 살아도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둘째로 좋았던 건 계절감이다. 봄엔 꽃이 폭죽처럼 터지고, 여름은 햇살이 길고 시원해 야외 활동을 즐기기 좋다. 가을은 말할 것도 없다. 붉은 단풍이 산 전체를 감싸는데, 하이킹을 하다 보면 마치 자연 속 미술관을 걷는 기분이 든다.


겨울은 눈이 많이 오지만, 그 덕분에 스키 리조트가 바로 일상 가까이에 있다. 퇴근 후에 스키 타러 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사치 아닌가. 차로 40분만 달리면 겨울 스포츠가 일상이 된다.

다음으로 정이 가기 시작한 건 사람들이다. 솔트 레이크 시티에는 다들 '강요하지 않는 친절'을 가지고 있다. 과한 관심도 없고, 무례하지도 않다. 모르는 사람이 문을 잡아주거나, 계산대에서 "오늘 하루 어땠냐"고 가볍게 묻는 일도 흔하지만, 그 이상을 파고들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감 속에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필요할 때만 삶이 부드럽게 겹치는 느낌이 편하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는 생각보다 교통이 좋고, 생활 물가도 서부 대도시 중에서는 부담이 덜하다. 자동차가 필수인 도시지만 길이 넓고 막히는 시간이 짧으며, 외식비나 렌트비도 서부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훨씬 합리적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곳도 고민거리가 적지 않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팬더믹 이후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다. 캘리포니아나 워싱턴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렌트비와 집값이 빠르게 오르고,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살기 좋은 도시였는데 점점 외부 자본과 개발 논리에 밀려 같은 속도로 뛰어야 하는 분위기가 생겨나는 것이다. 또 교통이 예전보다 붐비기 시작했고, 대중교통은 도시 확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겨울철 스모그 문제도 슬슬 눈에 띄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공기가 머물면서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는 날이 늘고 있다. 그동안 '조용한 도시'라는 장점 뒤에 숨어 있던 문제들이 이제 표면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안정된 매력을 지키면서 성장할 수 있을지, 이 도시도 시험대에 서 있는 셈이다.

그래도 삶이 튀지 않아도 편안하고 시간이 갈수록 정이 드는 도시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어디를 가도 화려함을 찾을 수 있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곳은 흔치 않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도시가 계속 좋아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