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정말 오래 끌고 가는 사건들이 있다.
Roy Moore 소송건도 10년전 무려 2017년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시작된 다툼이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이 무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문제가 된 돈은 820만 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한때 배심원단이 무어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했던 명예훼손 배상금인데, 이제 그 돈을 받을 길이 사실상 막힌 셈이다 ㅋㅋ.
로이 무어는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을 지낸 보수 성향 정치인이다.
동성결혼에 강하게 반대하고 공공장소에 십계명을 전시하는 문제로도 유명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2017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과거 미성년 여성들과 관련된 의혹이 터져 나왔다.
당시 리 코프먼이라는 여성은 자신이 14세였던 1979년, 당시 32세 검사보였던 무어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여성들도 십 대 후반 시절 무어가 데이트를 하거나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물론 무어는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성향의 정치자금 단체인 Senate Majority PAC이 자금을 지원한 Highway 31이라는 단체가 무어를 공격하는 TV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결국 무어는 그해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했다.
문제의 TV 광고, 533번이나 방송됐다
무어 측이 문제 삼은 것은 광고의 내용과 편집 방식이었다.
서로 다른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발언과 문장 일부를 이어 붙여 마치 무어가 쇼핑몰에서 어린 소녀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무어 측 변호인들은 어느 기자도 실제로 그렇게 주장한 적이 없는데 광고가 새로운 혐의를 만들어냈다고 반발했다.
더구나 이 광고는 선거 막판 앨라배마주에서 무려 533차례 방송됐다고 한다.
정치 광고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하면 상당한 횟수다.
무어는 결국 광고 제작에 자금을 댄 Senate Majority PAC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연방 배심원단은 무어의 주장을 받아들여 82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인정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무어의 완승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항소법원에서 뒤집혔다.
11연방항소법원은 무어가 상대 단체의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배상 판결을 취소했다.
미국에서는 정치인처럼 공적인 인물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일반인보다 높은 입증 기준이 적용된다.
단순히 광고 내용이 틀렸거나 부정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발표했거나, 진실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했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한다.
이 부분이 무어에게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 것이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어는 포기하지 않고 연방대법원에 사건을 다시 심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월요일 그의 상고심 심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6월에도 항소법원 결정의 효력을 중단해 달라는 긴급 요청을 거부한 바 있다.
결국 항소법원의 배상 판결 취소 결정이 그대로 유지됐다.
반대로 광고가 진실에 근거했다고 주장해 온 Senate Majority PAC에는 법적 승리가 됐다.
여기서 한 가지 구별해야 할 점이 있다. 대법원이 광고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고 새롭게 판결한 것은 아니다. 항소법원의 판단을 다시 심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미국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선거철마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광고가 정말 거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었다면 저런 광고를 내보내도 괜찮을까 싶은 장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보호한다. 특히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취급한다.
물론 정치 광고라고 해서 거짓말이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인이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넘어야 할 법적 문턱이 상당히 높다.
이번 사건도 그 차이를 보여준다.
배심원단이 820만 달러라는 거액의 배상을 인정했어도, 항소법원이 법적 입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면 결과가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820만 달러라는 숫자보다 미국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강하게 보호되는지를 보여주는 판례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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