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히 생각할 수 록 우리인생이라는 게 결국 확률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거다.

수학적으로 따지면 확률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나라의 교육 시스템 속에 들어가는지 거대한 확률 게임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한국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그 시절 성남에 살고 있었다는 것, 그 시점에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나온 것 자체가 이미 수많은 변수 중 하나의 결과다.

그런데 확률이라는 걸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놀라운 사실이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북쪽으로 100km만 올라가서 태어났다면?

그건 북한 출생이라는 뜻이고, 지금 이렇게 미국에서 커피를 마시며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사람들은 흔히 "내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지만, 사실 노력 이전에 태어난 환경이라는 확률이 먼저 깔린다.

미국에 와서 학업을 마치고 지금은 IT 계통의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건, 내가 가진 경쟁력의 절반은 내 선택이 아니라 태어난 배경에서 이미 정해졌다는 거다.

부모님이 교육을 중시했는지, 내가 다닌 학교에 어떤 선생님이 있었는지, 우연히 만난 친구가 내 진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내가 설계한 게 아니라, 확률이 굴려놓은 주사위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전부 운이라는 건 아니다.

확률은 조건을 제공할 뿐이고, 그 위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또 다른 확률을 만든다.

내가 성남에서 태어나 미국에 오기로 마음먹은 순간,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그게 성공 확률을 높였는지 낮췄는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매 순간이 주사위 굴리기 같다는 거다. "이번 판은 잘 나올까? 아니면 삐끗할까?" 이런 긴장감이 늘 따라붙는다.

요즘은 오히려 확률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까지 억지로 붙잡으려 하면 스트레스만 커진다. 예를 들어, 경제 위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무산되거나, 회사 구조조정으로 동료가 떠나는 건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건 확률이 굴러간 결과일 뿐이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주사위가 굴러올 때 조금이라도 좋은 면이 나오도록 준비하는 것뿐이다. 공부를 하고, 네트워킹을 하고, 건강을 챙기고, 글을 쓰는 것도 다 그런 준비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들도 대부분 우연에 가까웠다.

우연히 들른 세미나에서 알게 된 사람이 내 커리어를 바꿨고, 우연히 잡힌 인터뷰가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 이런 걸 보면 "확률이 곧 운명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결국 나는 이렇게 믿게 되었다. 인생은 거대한 확률의 연속이다. 내가 태어난 도시, 만난 사람들, 선택한 길이 주사위 던지기처럼 이어진 결과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어디 서 있든, 다음 주사위를 어떻게 맞이할지는 내 몫이라는 거다.

확률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확률을 활용하는 태도만큼은 내가 정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것도 또 하나의 확률이다.

수많은 글 중에 내 블로그를 클릭할 확률, 끝까지 읽을 확률, 그리고 잠시라도 생각에 잠길 확률.

그 작은 확률이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값진 결과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