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 주사를 맞고 살아난 사형수, 이번에는 총살형 생중계? - Washington - 1

워싱턴 DC에 살다 보면 정치 뉴스는 일상이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뉴스를 켜면 트럼프 이야기로 시작해서 트럼프 이야기로 끝나는 날이 많다.

그런데 요즘은 백악관이나 의회에서 벌어지는 정치 싸움보다 사형수 관련 뉴스가 훨씬 요란하다.

한쪽에서는 사형수가 독극물 주사를 맞고도 살아났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미군 장교 출신 사형수를 총살하겠다면서 그 장면을 미국 전역에 생중계하겠다고 나섰다.

무슨 21세기 미국 뉴스가 아니라 중세 처형장 이야기 같다.

먼저 테네시주에서 벌어진 사건부터 보자.

지난 9월 30일, 테네시주는 50세 여성 사형수 크리스타 파이크의 사형을 집행했다.

정확히 말하면 집행하려고 했다.

파이크는 1995년 동급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결코 동정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사형 집행 과정에서 사형 집행에 사용하는 펜토바르비탈이라는 약물을 주사했는데 죽지 않은 것이다.

한번도 아니고..... 두 차례나 투여했지만 결국 사망하지 않았다.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만독불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온갖 독에 면역이 생겨 독약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그 경지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사약먹고 원샷에 안죽어서 다른방법으로 죽였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실제로 파이크가 독극물에 엄청난 내성같은게 있었던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주삿바늘이 혈관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약물이 혈관 밖 조직에 퍼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형을 집행하던 교도소에서 결국 구급차를 불러 사형수를 병원으로 보냈다.

죽이려고 주사를 놓았다가 사람이 죽지 않으니 이번에는 살리려고 응급치료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독극물 주사를 맞고 살아난 사형수, 이번에는 총살형 생중계? - Washington - 2

파이크는 한때 인공호흡기에 의존할 정도로 위독했지만 의식을 회복했고, 10월 10일에는 병원에서 퇴원해 교도소로 돌아갔다.

테네시 주지사는 다른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교정당국 책임자는 사임했다.

사형수는 살아 돌아왔는데 사형 집행을 책임지던 사람은 직장을 잃은 셈이다.

웃을 일이 아닌데 상황 자체가 너무 기묘하다.

이번에는 텍사스 이야기다.

2009년 11월, 텍사스 포트후드 군기지에서 미 육군 소령이었던 니달 하산이 동료 군인들에게 총격을 가해 13명을 살해하고 3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하산은 군 정신과 의사였으며, 2013년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올해 12월 3일, 미군은 하산을 총살형으로 처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여기까지도 놀라운데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사형 집행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국방부는 인터넷 생중계 계획까지 밝혔다.

총살형 생중계라니. 이게 무슨 엽기적인 뉴스인가. 더군다나 미국에서.

미국에서 총살형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제도는 아니다. 일부 주에서는 여전히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실제 집행 사례도 있다.

하지만 미군이 사형을 집행하는 것부터가 매우 드문 일이다.

마지막 미군 사형 집행은 1961년 교수형이었고, 군의 마지막 총살형은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80년 넘게 보기 어려웠던 군 총살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 미국에서 반발이 쏟아졌다.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약 80%가 사형 생중계에 반대했다.

반면 하산의 총살형 집행 자체에는 53%가 찬성했다.

결국 오늘 10월 15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생중계 계획을 취소했다.

총살형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방송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법적 절차에 따라 집행 일정이 달라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국 대통령이 사형 집행의 생중계 여부까지 직접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워싱턴 정치도 참 별일이 다 있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다. 사형제를 폐지한 주도 있고, 법적으로 유지하면서 집행을 중단한 주도 있다.

연방정부와 군 사법체계는 또 별도로 움직인다.

사형 방법도 주마다 다르다.

독극물 주사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일부 주에서는 전기의자, 총살형, 질소가스를 이용한 방식까지 허용한다.

연방국가인 미국의 특성이지만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에서까지 이렇게 방식이 다르다는 건 생각할수록 묘하다.

하지만 국가가 사형을 집행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그 절차만큼은 엄격하고 일관되어야 하지 않을까.

독극물 주사를 두 번 놓고도 죽지 않아 구급차를 부르는 나라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총살 장면을 생중계하겠다고 나섰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취소하는 모습이다.

이쯤 되면 사형제도의 존폐 못지않게 국가가 사형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워싱턴에서는 매일같이 정치인들이 법과 정의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요즘 사형 관련 뉴스를 보고 있으면 정작 국가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가장 엄중한 절차에서조차 얼마나 많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미국 정치 뉴스가 아무리 요란해도 요즘 사형제도 뉴스만큼 기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