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애넌데일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한국어 간판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에 와 있는데 잠깐 정신을 놓고 있으면 한국 어느 동네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특히 Little River Turnpike를 따라가다 보면 한식당부터 한국 마트, 미용실, 은행, 부동산, 병원, 학원까지 한인 업소가 계속 나타납니다. Hummer Road에서 Evergreen Lane으로 이어지는 약 1.5마일 구간은 애넌데일 코리아타운의 중심이라고 할 만합니다.
애넌데일 한인타운이 재미있는 건 식당 몇 개 모여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과거 조사에서는 한국계 소유 사업체가 1,000개에 가까운 규모까지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고, 한인 식당만 수십 곳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한국 사람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상당 부분을 한국어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회계사나 부동산 사무실은 물론이고 은행, 안과, 치과, 세탁소, 미용실 같은 생활 밀착형 업종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한국 서점이나 노래방, PC방, 한인 신문사 같은 업종까지 자리 잡으면서 하나의 작은 한인 경제권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넌데일의 재미는 역시 먹는 데 있다고 봅니다. 고기 먹고 싶으면 한국식 BBQ를 찾아가면 되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면 순두부나 설렁탕, 갈비탕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식 치킨이나 분식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곳도 많고요.
Kogiya Korean BBQ, Lighthouse Tofu 같은 오래 알려진 식당들이 있는가 하면 1943 Classic이나 OiSO Korean Street Food처럼 조금 다른 분위기의 한국 음식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애넌데일을 오래전에 방문했던 사람이 몇 년 뒤 다시 와 보면 식당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한국 음식 자체가 미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면서 손님 구성도 변했습니다. 예전 한인타운이 주로 한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먹으러 오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미국인이나 다른 아시아계 사람들이 삼겹살을 먹고 순두부를 주문하는 모습도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애넌데일 한인타운의 진짜 가치는 음식점 숫자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민 와서 살다 보면 병원이나 세금, 보험, 부동산처럼 정확하게 설명을 들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헷갈릴 수 있는데, 한국어로 상담할 수 있는 병원이나 회계사, 변호사, 부동산 중개인을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입니다.
특히 미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 세대에게는 이런 환경이 훨씬 중요합니다. 장을 보고, 머리를 자르고, 병원에 갔다가 점심으로 순두부를 먹는 일상생활을 굳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애넌데일은 단순히 한국 식당이 많은 동네라고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수십 년 동안 한인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고 서로 손님이 되어주면서 만들어낸 생활권에 가깝습니다.
워싱턴 DC에서 멀지 않은 미국 교외 한가운데 이렇게 큰 한인 상권이 자리 잡았다는 것 자체가 꽤 흥미롭습니다. 세월이 지나 업종과 식당은 계속 바뀌겠지만, 애넌데일이 북버지니아 한인 생활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당분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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