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라델피아를 오래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이 도시를 "필라델피아"라고 부르는 게 오히려 어색해집니다.
입에 착 붙는 짧은 이름, 그냥 "필리(Philly)". 미국 사람들도 너무 자연스럽게 이렇게 부르니까,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필리에서 밥 먹고, 필리에서 일하고, 필리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죠.
이름이 길어서 줄인 것도 맞고 뭐 엄청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느낌이 그래요.
도시 자체가 가까운 동네 친구처럼 느껴지는 거죠. 거리도 사람도 투박한데 정이 있는 곳. 그래서인지 풀네임보다는 필리(Philly)라는 이도시의 애칭이 더 어울립니다.
그리고 이 필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강입니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스컬킬(Schuylkill) 강과 델라웨어(Delaware) 강은 필리 탄생부터 현재까지 쭉 함께였어요. 스컬킬 강? 이거 발음도 쉽지 않아요.
'스쿨킬', '슈킬', '스카이콜'... 사람마다 부르는 방식이 다릅니다. 사실 원래 뜻부터가 좀 웃깁니다.
옛 네덜란드 사람들이 "숨은 강"이라고 불렀다고 하거든요. 숨어 있었다기보다 찾기 어려운 수로처럼 느껴졌다는 말인데, 지금도 이름 자체가 숨바꼭질 같아서 이 도시랑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이 강이 필라델피아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엔 배가 다니고, 석탄과 물자가 강을 따라 오르내렸어요. 강변에 철도와 공장이 줄지어 들어서고, 도시가 확 커지는 발판이 됐죠. 그러다 산업이 쇠퇴하고 강이 오염되기 시작하면서 한때는 "물 냄새 난다"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강변이 도시에서 가장 멋진 산책 코스가 됐습니다. 자전거 타고 달리는 사람, 강 바라보며 조깅하는 사람, 벤치에서 점심 먹는 직장인들까지... 산업이 물러간 자리에 여유가 들어섰달까요.
특히 보트하우스 로우(Boathouse Row)는 밤에 조명이 켜질 때 정말 예쁩니다. 물 위에 불빛이 흔들리는데, 그 모습이 이 도시의 역사처럼 조금 쓸쓸하면서도 멋있어요. "이 강이 없었다면 지금의 필리는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죠. 강이 도시를 키우고, 도시가 강을 품었던 거예요.
필리는 친근한 이름을 가진 도시이고, 그 이름 속에 강처럼 오래된 이야기가 흐르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는 처음엔 낯설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마음 깊숙이 스며듭니다.
화려하게 반짝이지 않아도, 오래 함께할 만한 진짜 친구 같은 도시. 그래서 다들 그냥 편하게 부르는 거죠. "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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