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줄여서 ICC라고 하지요.

국제 재판소 하면 첩보나 전범 재판 장면 같은 걸 떠올렸는데, 실제로 가보면 생각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현대식 건물입니다

ICC는 2002년에 설립됐어요. 유엔 산하 기관은 아니지만, 로마규정(Rome Statute)이라는 국제조약에 근거해 만들어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상설 국제형사재판소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쟁범죄나 집단학살, 인도에 반한 범죄 같은 '국가가 아닌 개인'을 처벌하는 세계 유일의 법정인 거죠.

그전까지 이런 재판은 전부 임시로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후에 있었던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르완다 학살 이후에 열린 ICTR 같은 특별재판소들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이런 건 한 사건이 끝나면 해산되는 구조였어요. 그러다 국제사회가 "이제는 상설로 두자"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ICC입니다.

본부가 있는 헤이그는 '세계의 법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법 관련 국제기구들이 몰려 있는 도시예요.

국제사법재판소(ICJ), 구유고 전범재판소(유고 ICTY), 그리고 평화궁(Peace Palace)까지 다 이 근처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도시 안에 국제정의의 상징들이 모여 있는 셈이죠.제가 ICC를 방문했을 때는 사전 예약을 하고 가야 했습니다.

일반인 관람도 가능하지만 보안이 꽤 철저해요. 입구에서 여권을 보여주고 공항 검색대처럼 철저히 검사받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내부는 깔끔하고 현대적이었고, 법정은 생각보다 작았어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웅장하기보다, 투명 유리벽으로 나뉜 구조 안에서 판사, 검사, 피고, 그리고 통역사들이 각자의 부스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국제재판이다 보니 실시간 동시통역 시스템이 작동 중이었고, 이어폰을 꽂으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 원하는 언어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인류가 결국 이런 제도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ICC의 가장 큰 의미는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책임을 묻는 마지막 법적 장치'라는 점입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아요.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아직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치적으로 '한쪽만 처벌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인권 침해가 일어나면 "ICC에 회부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큰 변화입니다.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는 잔잔한 바람이 불고, 멀리서 트램이 지나갔습니다.

헤이그에 간다면 평화궁만 보지 말고 꼭 ICC도 들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