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예요 - 칠리 콘 카르네 "Chili con carne".

말 그대로 고기 들어간 칠리. 멕시칸 스타일 음식 같기도 하고 카우보이음식 느낌도 나고. 감자튀김하고 많이 먹죠.

그런데 웃긴 건 이게 미국 남부지방 특히 텍사스에서 완전히 자기들 음식처럼 자리 잡았다는 거죠.

텍사스에서 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 칠리 콘 카르네가 저한테는 '소울푸드'가 되어버렸어요.

기분이 꿀꿀할 때, 비오고 나가기 귀찮을 때, 혹은 그냥 집에서 느긋하게 영화를 보며 맥주 한 캔 하고 싶을 때 — 바로 이 칠리를 꺼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꺼내 먹는 게 아니라, 끓이는 거죠.

처음엔 이게 그렇게 맛있을 줄 몰랐어요.

그저 미국 친구 집 파티 갔다가 한 번 먹어봤는데, 어라? 은근 중독되더라고요.

고기, 콩, 토마토 소스, 매콤한 향신료가 어우러져서 짠듯 달듯 깊은 맛을 내는데, 입안에서 포근하게 퍼지는 그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 밥이랑 궁합이 찰떡입니다.

제가 집에서 만드는 버전은 조금 변형이 된 한국 스타일 칠리예요.

일단 재료는 간단합니다.

다진 소고기나 칠면조, 양파, 마늘, 토마토 캔, 레드빈(혹은 블랙빈), 칠리 파우더, 큐민을 준비해요.

근데 여기에 저는 고춧가루 조금 넣고, 된장도 아주 소량(!) 넣어요.

말이 안 되는 조합 같지만, 그게 묘하게 감칠맛을 살려줘요. 아무래도 한국 입맛에는 이런 깊은 장맛이 은근 그립잖아요.

끓이는 방법도 어렵지 않아요.

팬에 기름 두르고 양파랑 마늘 볶다가 고기 넣고 익혀주고, 그다음에 토마토랑 콩이랑 향신료 한가득 넣고 푹 끓이면 끝.

처음엔 싱거운 듯한데, 조금씩 졸이다 보면 그 국물에서 뭔가 버터처럼 진한 느낌이 납니다.

그때 불 끄고, 살짝 식힌 후 밥이나 또띠야, 감자칩 위에 올려 먹으면 진짜 행복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게 뭐야, 콩들어간 고기찌개야?' 할 수 있는데, 먹다 보면 그 매력에 빠져들게 돼요.

특히 겨울철에는 정말 제격이에요.

그리고 이게 또 냉장고를 부탁해.... 남은재료 처리로도 최고예요.

남은 야채 다 넣어도 되고, 유통기한 임박한 통조림 콩이나 토마토 페이스트도 재활용 가능!

저는 이 칠리를 한번 끓이면 3일은 먹어요. 첫날은 밥이랑, 둘째 날은 감자나 고구마 구워서 위에 얹어 먹고, 셋째 날은 나쵸에 치즈 얹고 오븐에 돌려서 '칠리 나쵸'로 변신.

마치 하나의 재료로 셰프가 된 기분이랄까.

친구가 물어보더라고요. "왜 그렇게 칠리를 자주 해 먹어?"

제 대답은 이거였어요. "고기도 먹고, 콩도 먹고, 야채도 먹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음식이 어디 흔해?"

혹시 아직 한 번도 칠리 콘 카르네를 안 먹어본 분이 있다면, 이번 주말 한 번 끓여보세요.

한국인 입맛에도 충분히 맞게 조리할 수 있고, 무엇보다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미국식 김치찌게 같은 음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