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자바시장 근처에서 일을 시작했던 건 2005년쯤이었어요.
그땐 패션 자바시장이라고 불리는 엘에이 다운타운 디스트릭트에 크고 작은 수많은 봉제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죠.
디자이너가 스케치를 들고 오면, 우리는 그 도안을 보고 원단에 본을 따고, 재단하고, 첫 샘플을 만들어줬습니다.
이 과정이 있어야만 옷이 공장에서 수천 벌로 찍혀 나갈 수 있었죠. 한마디로 "옷의 탄생을 첫 번째로 맡는 직업"이 바로 재단사였습니다.
그 시절엔 재단사가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포지션이었고, 일손이 부족할 만큼 바빴습니다.
맞춤옷이 아니라도, 기성복 공장에서 옷이 대량 생산되려면 반드시 재단 공정이 필요했으니까요.
지금은 솔직히 예전만큼 전망이 밝다고 하긴 어려워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어요.
2000년대 부터 미국 기성복 브랜드들은 생산비 절감을 위해 멕시코, 중국, 베트남 같은 해외 공장으로 대거 이동했어요.
공장에서 본을 따는 '재단사' 일자리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사람이 손으로 본을 따지 않고, 컴퓨터 패턴(CAD)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디지털 패턴을 만들고, 커팅 머신으로 원단을 자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수작업 재단사는 설 자리가 줄었습니다.
다운타운 LA 패션 디스트릭트는 여전히 의류 제조의 중심지지만, 예전처럼 '공장형 재단사'들이 몰려 있지는 않아요. 지금은 소규모 맞춤 브랜드, 샘플 전문 스튜디오, 업사이클링 작업실이 늘어났고, 대규모 공장은 많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몇 가지 영역에서는 여전히 재단사가 필요합니다. 디자이너가 새 옷을 만들 때, 첫 샘플을 정확히 재단해줄 사람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CAD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미묘한 감각이 있거든요.
그리고 웨딩드레스, 고급 수트 같은 분야는 여전히 손으로 재단해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쪽은 재능이 남달라야 하기는 합니다.
일부 부티크 'Made in LA'를 내세우는 브랜드들은 대량생산보다는 소규모 제작을 하기 때문에 숙련된 재단사가 필요합니다.
만약 젊은 친구가 "나 이 길로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고 묻는다면, 솔직히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단순 재단사로만은 미래가 어두워요. 공장에서 본만 따주는 역할은 점점 줄어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CAD, 패턴메이킹, 샘플 제작까지 다룰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단순 노동이 아니라, 디자인과 생산을 이어주는 브리지 역할이 되기 때문이죠. 특히 LA는 FIDM 졸업하고 시작하는 패션 종사자들이 많아서, 이들이 의지할 숙련된 샘플 재단사는 항상 필요합니다.
공장에서 본만 따주던 전통적인 재단사 일자리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서 CAD, 패턴, 샘플 제작까지 아우른다면 여전히 LA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즉, 옛날처럼 "가위질 잘하면 평생 먹고살 직업"은 아니지만, 재단이라는 기본기를 가지고 패션의 다른 분야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젊은이들도 도전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