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라 하면, 한마디로 “야구는 이렇게도 열정적일 수 있구나”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보스턴이라는 도시 자체가 미국 독립의 역사와 학문, 문화가 뒤섞여 있는 곳인데, 그중에서도 스포츠—특히 야구—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문화 요소거든요. 이들이 홈으로 쓰는 펜웨이 파크(Fenway Park)는 1912년에 개장해, 현재도 현역으로 사용되는 메이저리그(MLB) 야구장 중 가장 오래된 구장이라는 점도 더욱 특별함을 더해줍니다.

펜웨이 파크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 필드 끝에 우뚝 솟은 초록색 벽, 이른바 “그린 몬스터(Green Monster)”가 시선을 사로잡아요. 이 높다란 벽은 외야 수비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타자들에게는 엄청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죠. 만약 이 벽을 넘기는 홈런이라도 치게 되면, 그 짜릿함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실제로 펜웨이 파크의 독특한 구조 덕분에, 야구 경기를 보러 온 팬들은 한층 더 흥미진진한 경기를 즐길 수 있어요. 보통 구장이 좀 널찍널찍하다면 공이 어디로 가든 대충 예상이 되는데, 펜웨이 파크처럼 울퉁불퉁하고 여유 공간이 적은 곳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때문에 더 손에 땀을 쥐게 되죠.

이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팀은 1901년에 창단된 이후, 야구 역사에서 참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 왔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밤비노의 저주(Curse of the Bambino)”일 거예요. 원래 레드삭스는 1900년대 초반부터 1918년까지 이미 여러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낸 강팀이었는데, 1918년 이후에는 정말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했거든요. 1919년에 팀의 간판 스타였던 베이브 루스(Babe Ruth)를 뉴욕 양키스에 넘긴 뒤부터, 이 팀은 한 세기가 넘도록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했습니다. 보스턴 팬들은 이걸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해서 생긴 저주다!”라고 부르며, 부진할 때마다 그 한을 곱씹었다고 해요. 덕분에 양키스와는 지금까지도 치열한 라이벌 구도가 이어지고 있죠. 보스턴 레드삭스가 잘 나갈 때면 양키스 팬들이 약올리고, 양키스가 승승장구할 때는 보스턴 팬들이 분노하고… 이렇게 아옹다옹 싸우면서도, 양팀의 맞대결은 늘 MLB 최대 흥행 매치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럼 이 밤비노의 저주는 언제 풀렸느냐—바로 2004년이었죠.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레드삭스가 86년 만에 우승을 달성하면서, “밤비노의 저주”는 드디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드라마틱한데요, 우선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ALCS)에서 그 라이벌 뉴욕 양키스에게 3패를 먼저 내주고도, 믿기지 않는 4연승으로 시리즈를 뒤집는 대역전극을 선보였어요.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도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해버리는 엄청난 기세를 뽐냈죠. 이 시즌에 “미스터 클러치” 데이비드 오티즈(David Ortiz)를 비롯해 매니 라미레스(Manny Ramirez), 커트 실링(Curt Schilling), 페드로 마르티네스(Pedro Martínez) 등이 정말 명장면을 많이 남겼습니다. 보스턴 팬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죠?

사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를 빼놓을 수 없어요. MLB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테드 윌리엄스는 “배팅 미신(batting machine)” 같은 존재였고, 1941년에는 MLB에서 마지막으로 시즌 타율 4할(0.406)을 달성해 전설적인 업적을 남겼죠. 전쟁에 참전하느라 커리어에 공백이 생겼는데도, 돌아와서 다시 탁월한 타격 실력을 뽐냈습니다. 팀이 우승하지 못하던 시절에도, 테드 윌리엄스는 보스턴 야구 팬들에게 자부심이 되어준 존재였어요. 훗날엔 “레전드 중의 레전드”로 불리며 레드삭스의 상징 같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카를 야스트렘스키(Carl Yastrzemski), 짐 라이스(Jim Rice), 웨이드 보그스(Wade Boggs) 등등 시대별로 레드삭스의 얼굴이 되어준 선수들도 정말 많아요. 각각이 팀을 위해 헌신하며, 기록과 명장면을 쌓아왔습니다. 그리고 보스턴 팬들은 유독 선수들에게 애정이 깊은 편이죠. 예를 들어, 팀이 좀 부진해도 “에잇, 내가 이 팀 못 떠난다!”라면서 굳건히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요. 오히려 팀을 응원하다가 속이 터질 때가 많았기 때문에, 한 번 마음을 준 팬들은 절대 레드삭스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런 끈끈한 팬덤 덕분에, 펜웨이 파크가 매진 사례를 기록한 날도 굉장히 많았어요. 실제로 “펜웨이 파크 연속 매진 기록”이 MLB 역사에서 톱급으로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또 한 가지, 보스턴 레드삭스 하면 “Sweet Caroline”이란 곡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기 후반이 되면 이 노래가 펜웨이 파크에 울려 퍼지는데, 팬들이 다 같이 “So good! So good! So good!”을 외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에요. 원래는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노래인데, 펜웨이 파크에서 트는 순간 모두가 대형 합창단이 되어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구보다 이 노래 합창을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고 농담할 정도니까요. 이런 독특한 응원 문화가 “보스턴 레드삭스를 응원하는 재미”를 배가시켜 주는 것 같아요.

한편, 레드삭스의 팬들은 원정 경기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팀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공항이든, 다른 도시 경기장이든, 레드삭스 유니폼과 모자를 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죠. 심지어 세계 어디든 보스턴 출신들이 모여 있으면, “Go Sox!”를 외치며 간단히 서로를 알아보곤 해요. 이건 보스턴이란 도시가 지닌 정체성 자체가 스포츠에 많이 녹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레드삭스 외에도 NBA의 셀틱스(Celtics), NHL의 브루인스(Bruins), NFL의 패트리어츠(Patriots) 등 보스턴을 연고로 하는 다른 팀들도 워낙 인기 있어서, 스포츠 자체가 보스턴 삶의 한 부분인 셈이죠.

레드삭스는 최근 들어 2004년, 2007년, 2013년, 그리고 2018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이젠 “우승할 줄 모르는 팀”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어던졌습니다. “밤비노의 저주” 운운할 필요도 없게 된 거죠. 대신, 21세기 들어서는 MLB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으로서 강한 전력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양키스와의 라이벌 관계는 여전하지만, 이젠 “망할 양키스 때문에 우승을 못 해!”가 아니라 “누가 올해 더 센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더 두드러져요.

끝으로, 보스턴 레드삭스를 진정으로 체감해보려면, 직접 펜웨이 파크에서 한 경기를 관람해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구장 입장권이 여느 빅마켓 팀 못지않게 비싸긴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작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야구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벽돌 건물과 좌석, 그리고 관객들 하나하나가 쏟아내는 열정은 TV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니까요. 경기 전에는 핫도그, 땅콩, 프레첼 같은 전통적인 야구장 간식을 사서 자리에 앉은 뒤, 1회부터 9회 말까지 벌어지는 모든 순간을 생생히 느껴보는 걸 권합니다. 누군가 홈런을 치면 옆자리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삼진을 잡을 때마다 박수를 치고, 7회 스트레치 타임 즈음엔 “Sweet Caroline”을 모두 함께 부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 이게 보스턴 레드삭스의 진짜 매력이구나”를 깨닫게 될 거예요.

정리하자면, 보스턴 레드삭스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 속에서 굵직한 자취를 남긴 전통의 강호이자, 보스턴이라는 도시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예요. 한때는 밤비노의 저주로 인해 긴 암흑기를 겪기도 했지만, 2004년 이후부터는 우승을 여러 차례 일궈내며 이제는 강팀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펜웨이 파크의 독특한 구장 환경과 끈끈한 팬덤 문화, 양키스와의 영원한 라이벌 구도 등은 레드삭스를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흥미롭고 열정적인 구단 중 하나로 만들어주죠. 혹시 야구나 스포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Go Sox!”를 외치며 그 뜨거운 분위기에 푹 빠져보시는 것도 인생에서 꽤 근사한 추억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