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그네를 타던 여자아이 둘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영어 가사 사이로 한국어 한 소절이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둘 다 한국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발음이 제법 그럴듯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노래는 '골든'이었어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서 '케데헌'의 주제곡이죠.
이 영화는 2025년 6월 20일에 공개됐습니다. 벌써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이들 입에서 여전히 흘러나온다는 게 신기했어요.
숫자로 봐도 이 열기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넷플릭스 발표에 따르면 공개 후 91일 기준 시청 수 2억 3,600만 회를 넘기며 '레드 노티스'가 갖고 있던 2억 3,090만 회 기록을 깼어요.
'골든'은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습니다. 케이팝 걸그룹 노래가 그 자리에 오른 건 처음이었어요. 실존하는 그룹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속 가상 그룹이라는 점이 더 묘했죠.
그리고 올해 3월 15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두 개를 받았습니다. 무대에 선 매기 강 감독이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을 위한 상이라고 말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골든'을 함께 만들고 부른 이재(EJAE)는 수상 소감에서 모두가 한국어 가사까지 따라 부르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어요. 공원에서 들은 그 한 소절이 바로 그 장면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매기 강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캐나다로 이민 간 사람이에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영화 곳곳의 디테일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날 공원에서 집으로 걸어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열기가 교실 안의 한국 이름에도 닿았을까.
우리 세대 이민자들은 이름 때문에 작은 망설임을 겪은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출석을 부를 때 선생님이 한참 머뭇거리던 그 몇 초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영어 이름을 따로 지어줬어요. 한국 이름은 미들네임으로 조용히 접어두고요.
저는 그 선택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가 덜 불편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학교 앞 픽업 줄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조금 결이 달라요. 반 친구가 한국 이름의 뜻을 물어봤다는 아이,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핼러윈에는 영화 속 세 멤버 루미, 미라, 조이 분장을 한 아이들이 골목마다 보였습니다. 한국계든 아니든 상관없이요.
아이들 세계에서 한국적인 것이 '설명해야 하는 것'에서 '알고 싶은 것'으로 옮겨가는 순간을 보는 것 같았어요.
팬들이 영화 제목을 '케데헌'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입니다. 한국식 줄임말 문화가 그대로 따라 들어온 거니까요.
영화 속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도 마찬가지예요. 사자는 한국어로 저승사자이기도 하고 동물 사자이기도 하죠.
그 말장난을 이해하려면 한국어를 조금은 알아야 합니다. 미국 아이들이 그걸 찾아보고 있다는 게 저는 꽤 놀라웠어요.
이름이 낯설다는 건 결국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자주 듣는 소리는 어느새 평범해지고, 평범해진 이름은 더 이상 아이를 움츠러들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유행은 언젠가 식고, 아이들의 관심은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가니까요.
한국 이름이 '멋져 보이는' 시기가 지나면 다시 '어려운 이름'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죠. 저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또 하나, 한국 문화가 유행한다고 해서 아이 개인이 그 문화를 대표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케이팝을 좋아하지 않는 한국계 아이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너 한국 사람이니까 그 노래 다 알지?"라는 질문이 어떤 아이에게는 또 다른 부담일 수 있어요. 관심이 고정관념으로 굳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도 저는 이번 변화를 가볍게 넘기고 싶지 않아요. 문화가 사람을 바꾸는 속도는 법이나 캠페인보다 훨씬 조용하고 빠를 때가 있습니다.
이름은 결국 불리는 소리로 기억됩니다. 누군가 그 소리를 제대로 불러보려고 애쓰는 순간, 이름은 조금 더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한국 이름을 가진 아이를 만나면 그 이름을 천천히 정확하게 불러봅니다. 아이가 자기 이름을 자랑스럽게 고쳐 말해줄 때 참 반가워요.
영화 한 편이 모든 걸 바꾸진 않겠죠. 하지만 교실에서 한국 이름이 불릴 때 생기던 그 몇 초의 머뭇거림이 조금이라도 줄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께 하나만 권하고 싶어요. 아이 이름에 담긴 뜻을 한 번쯤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보시라고요.
친구가 물어볼 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아이는, 유행이 지나도 자기 이름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공원의 그 두 아이는 노래가 끝나자 다시 그네를 힘껏 굴렸습니다. 가을 햇살 사이로 한국어 가사가 한 번 더 흩어지던 오후였어요.

SolidStone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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