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엘에이 다운타운에 있으면서, 비교적 시설이 현대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한 아파트에 산다.
내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DTLA의 고층 빌딩들, 그리고 하루 종일 트래픽에 늘어선 110번 프리웨이의 자동차들... 누가 봐도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런 도심 한가운데서, 내가 직접 상추를 키우고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말하면 다들 놀란다.
흙도 없고, 커다란 텃밭도 없고, 베란다 화단도 없다. 그런데도 채소가 잘 자란다.
그 비결은 바로 수경재배(hydroponics)다. 수경재배를 처음 시작한 건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유튜브에서 “흙 없이 식물 키우기”를 검색해보다가 아마존에 80불들여서 주문하게 되었다.
처음엔 상추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루꼴라, 바질, 민트, 그리고 방울토마토까지 자라고 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수경재배는 다르다.
땅이 필요 없다. 작은 공간이면 된다. 심지어 햇볕이 부족한 날은 LED 조명으로 해결된다.
LA처럼 부동산이 비싸고 땅이 귀한 도시일수록, 수경재배의 장점은 더 뚜렷하다.
좁은 공간을 수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실내에서도 기를 수 있으니 아파트, 사무실, 심지어 주차장까지 농장으로 바뀔 수 있다.
캘리포니아, 특히 LA는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여름이면 단수 경고가 나오고, 잔디밭을 갈아엎으라는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수경재배는 물 사용량이 전통 농업의 10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물은 순환되기 때문에 버려지지 않는다. 수경재배기 펌프는 아주 조용하게 물을 순환시킨다.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이며, 물 절약까지 가능한 이 방식은 기후변화 시대의 농업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아침마다 내가 키운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다 보면, 이 도시에서 나만의 작은 안식처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식물을 돌보는 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진다. 요즘처럼 디지털 기기에 찌든 삶 속에서, 야채키우는 정서적 위안은 꽤 크다.
사실 수경재배는 단지 취미로 끝나지 않는다. 다운타운 LA의 창고형 건물들, 혹은 낡은 빌딩의 옥상을 활용해 도심형 스마트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LED 조명, 자동 급수 시스템, 온도 조절 센서까지 붙여서 완전 자동화된 실내 농장을 구축하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스타트업은 LA 한복판에서 수경재배로 재배한 채소를 레스토랑이나 유기농 마켓에 공급하고 있다.
식재료가 배송되는 거리마저 짧으니, 신선도는 최고다. 도시 농부라는 말이 농담 같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그리고 땅 디딜 틈 없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세상에 사는 도시인들에게, 녹색이라는 단어는 점점 더 간절한 것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