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처음부터 따로 있었던 건 아닙니다.

원래는 둘 다 그냥 '캐롤라이나' 하나였다고 하네요. 1600년대 중반, 영국의 찰스 2세(Charles II)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을 충성스럽게 도운 8명의 귀족들에게 "너희들 미국 땅 좀 가져라" 하며 선물처럼 준 땅이 바로 'Province of Carolina', 즉 캐롤라이나 식민지였죠. 그땐 지금의 노스·사우스 모두 한 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이 너무 컸어요. 북쪽은 버지니아랑 닿아있고 남쪽은 스페인령 플로리다와 맞닿아 있었는데, 그 중간에 살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숲, 늪, 언덕이 끝없이 이어져서 왕이 아무리 땅을 줘도 실제로 다스리기가 어려웠죠.

그러다 보니 북쪽 정착민들과 남쪽 정착민들 사이에 생활환경부터 성격까지 전혀 달라졌습니다. 북쪽, 즉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 쪽은 버지니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 중심이었고, 비교적 소박하고 자급자족형 농사를 짓는 농민이 많았습니다.

반면 남쪽, 지금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쪽은 항구도시 찰스턴을 중심으로 무역이 활발했고, 유럽에서 온 부유한 귀족들과 대규모 플랜테이션(노예 농장)이 자리 잡았죠. 쉽게 말해 북쪽은 일꾼의 땅, 남쪽은 부자의 땅이 된 겁니다.

둘이 제대로 갈라지기 시작한 건 1710년대입니다. 그때쯤 캐롤라이나 식민지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어요. 북쪽 사람들은 남쪽의 부자들이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한다고 불평했고, 남쪽 사람들은 북쪽이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게으르다고 욕했습니다.

결국 왕실이 "이제 그만 싸워라, 그냥 나눠서 다스려라" 하고 나선 거죠. 그래서 1712년에 공식적으로 두 식민지로 분리됩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뉴버른(New Bern)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총독을 두게 됐고,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찰스턴(Charleston)을 수도로 삼았죠.

그 이후로 노스캐롤라이나는 산업이나 항구도시가 늦게 발전했지만 대신 독립정신이 강했어요.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군에게 가장 먼저 맞서 싸운 곳 중 하나가 바로 여기였죠.

반면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남부의 전형적인 귀족 사회로, 노예 노동에 의존한 농업 경제가 중심이었어요. 미국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이 처음으로 분리 독립을 선언한 곳도 사우스캐롤라이나입니다. 말하자면 한 뿌리였는데, 한쪽은 "독립 정신", 다른 한쪽은 "전통과 권위"로 나뉘어 자라난 셈이죠.

재미있는 건, 미국에서 이름에 '남'과 '북'이 같이 들어가는 주는 이 둘 말고는 다코타밖에 없다는 거예요.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도 마찬가지로 원래는 '다코타 준주(Dakota Territory)'였다가 1889년에 나눠졌습니다. 당시 워싱턴 정치인들이 "주 하나로 두 명 상원의원보다, 둘로 쪼개면 네 명이잖아?" 하는 계산을 했다는 설도 있죠.

이런 걸 보면, 미국 사람들은 땅이 넓어서 나눈다기보다 성격이 달라서 나누는 경향이 있어요. 북쪽은 늘 실용적이고, 남쪽은 전통적이고 느긋하죠.

그래서 "언젠가 캘리포니아도 남캘리포니아, 북캘리포니아로 나뉠 거다" 하는 말이 나옵니다. 실제로도 그런 시도 몇 번 있었습니다. 북쪽은 실리콘밸리 중심의 기술과 진보, 남쪽은 로스앤젤레스와 사막 도시 중심의 성격 차이가 크니까요.

결국 캐롤라이나의 분리는 단순한 행정 구분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같은 이야기입니다.

같은 뿌리에서 시작했지만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달라지면 언젠가 "우리 따로 살자" 하게 되는 거죠. 노스캐롤라이나는 지금도 교육과 연구 중심의 차분한 주로,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여전히 전통과 남부문화가 짙은 주로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