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마트 냉동 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어요. 문을 열 때마다 하얀 김이 구름처럼 확 퍼져 나오는데, 그 안에 칸칸이 나뉜 도시락들이 빼곡하게 누워 있더라고요.
그 칸막이 쟁반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어요. 이걸 처음 생각해 낸 곳이 어디였을까 하고요.
찾아보니 답이 의외로 가까웠어요. TV 디너라는 이름을 세상에 퍼뜨린 회사가 바로 오마하의 C.A. 스완슨 앤 선즈였거든요.
이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장면은 칠면조예요. 추수감사절 수요를 너무 크게 잡는 바람에 팔리지 않은 냉동 칠면조가 260톤이나 남았다는 거죠.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그 칠면조는 냉장 철도 화차 열 칸에 실려 있었대요. 화차의 냉각 장치가 기차가 달릴 때만 돌아가서, 칠면조를 싣고 동부와 네브래스카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는 얘기도 함께 전해져요.
상상해 보면 좀 웃기지 않나요? 상하지 말라고 칠면조를 태우고 대륙을 계속 달리는 기차라니요.
해결사로 등장하는 사람이 스완슨의 영업사원 게리 토머스예요. 비행기 기내식에 쓰던 알루미늄 쟁반을 보고, 칸을 나눈 쟁반에 한 끼를 통째로 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해요.
첫 메뉴는 딱 추수감사절 식탁이었어요. 칠면조에 그레이비, 옥수수빵 스터핑, 고구마, 버터에 버무린 완두콩이 한 쟁반에 들어갔죠.
토머스의 이야기로는 처음 주문한 알루미늄 쟁반이 5,000개였다고 해요. 그 첫 물량이 금방 팔려 나갔다는 거고요.
그리고 첫 번째 풀 생산 해였던 1954년에 1,000만 개가 팔렸다고 스미소니언 매거진은 적고 있어요. 남은 칠면조 처리용 아이디어치고는 숫자가 너무 커서 저도 두 번 읽었어요. 골칫거리가 1년 만에 히트 상품이 된 셈이니까요.
이름도 절묘했죠. 그 무렵 미국 가정에 텔레비전이 빠르게 들어오던 시기라, 쟁반 하나 들고 TV 앞에 앉는 저녁이라는 그림이 바로 떠올랐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져요. 이 유명한 260톤 칠면조 이야기는 주로 게리 토머스 본인이 전한 버전이거든요.
같은 시기 스완슨에서 일했던 베티 크로닌은 다르게 기억해요. 그는 TV 디너 개발을 맡았던 세균학자였고, 고기와 채소와 감자가 같은 시간에 함께 데워지도록 맞추는 일을 했다고 해요.
크로닌은 컨셉 자체는 길버트와 클라크 스완슨 형제에게서 나왔다고 말했어요. 토머스가 발명가로 알려진 게 이해가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하기도 했고요.
시카고 트리뷴은 1989년에 크로닌을 TV 디너의 어머니라고 불렀어요. 그러니까 발명가가 누구냐는 질문엔 지금도 깔끔한 정답이 없는 셈이에요. 오히려 그 애매함이 이 이야기를 더 오래 살아남게 한 것 같기도 하고요.
날짜도 출처마다 조금씩 달라요. 1953년에 처음 팔았다는 기록도 있고, 오마하 쪽 회고에는 1954년 4월 6일에 첫 제품을 선보였다고 나와요.
가격도 98센트였다는 곳과 1달러 9센트였다는 곳이 갈려요. 그래서 저는 숫자 하나에 매달리기보다 큰 흐름만 믿기로 했어요.
확실한 건 이 쟁반이 오마하에서 미국 식탁 전체로 퍼졌다는 사실이에요. 성공이 얼마나 빨랐는지는 그다음 해를 보면 알 수 있어요.
1955년에 캠벨 수프 컴퍼니가 스완슨을 사들였거든요. 캠벨의 첫 대형 인수였다고 하니, 출시 1년 남짓 만에 큰 회사가 탐낼 만한 물건이 된 거죠.
스완슨 집안 이야기도 흥미로워요. 창업자 칼 스완슨은 17살에 스웨덴에서 네브래스카로 이민 와서, 블레어의 농장에서 영어를 배우며 일을 시작했대요.
이민자가 세운 회사에서 미국의 가장 미국적인 저녁 하나가 나온 거예요. 이 대목에서 괜히 마음이 몽글해졌어요.
처음 낯선 땅에서 장 보던 날이 떠올랐거든요. 영어 라벨을 하나하나 읽기 힘들 때, 사진만 보고 고를 수 있는 냉동 도시락이 은근히 든든했어요.
한인 이웃들 얘기를 들어봐도 비슷해요. 이민 초기에 맞벌이로 바쁠 때 아이들 저녁을 냉동 도시락으로 때운 기억, 하나쯤은 다들 있더라고요.
물론 요즘은 TV 디너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해요. 그 평가가 틀렸다고 말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저는 이 쟁반을 실패를 수습하다 나온 물건으로 보는 쪽이 더 좋아요. 남은 칠면조 260톤이라는 골칫거리가 누군가의 저녁 시간을 바꿔 놓았으니까요.
누가 진짜 발명가였든, 한 사람의 번뜩임만으로 된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영업사원의 아이디어, 연구실의 조리 시간 계산, 경영진의 결단이 줄줄이 이어져야 가능했겠죠.
그렇게 보면 칸막이 쟁반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붙인 결과물이에요.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며 모양을 바꾸듯, 아이디어도 여러 손을 거치며 모양이 잡힌 거고요.
이번 겨울엔 냉동 코너 앞에서 조금 덜 서두르게 될 것 같아요. 칠면조 기차가 달리던 그 길이 쟁반 한 칸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꽤 괜찮은 저녁이잖아요.

배달왕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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