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애틀 살면서 겨울만 되면 몇달 동안 해 구경 힘들정도로 하늘이 흐리고, 비는 부슬부슬 성질나게 오고, 난방비는 또 왜 그렇게 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동네 살면서 아무리 불평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하나 있다.
시애틀은 겨울만 넘기면 자연을 보러 멀리 여행 갈 필요가 없는 도시다.
그냥 집에서 나와 조금만 움직여도 공원이 나오고, 호수가 나오고, 바다가 보인다. 날씨 좋은 날에는 저 멀리 눈 덮인 산까지 떡하니 보인다.
처음에는 산 이름도 몰랐다. "저기 저렇게 큰 산이 뭐야?"
했더니 레이니어 산이란다. 높이가 14,410피트가 넘는 산인데 맑은 날 시내에서도 보인다.
구름 사이로 갑자기 나타나는 날에는 몇 년 살아도 한번씩 쳐다보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곳 중 하나가 Discovery Park다.
마그놀리아에 있는데 500에이커가 넘는다. 시애틀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고 한다.
처음 갔을 때는 그냥 큰 동네 공원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한참을 걸었다.
숲길도 있고 초원도 있고 절벽도 있고 바닷가까지 나온다.
한쪽에서는 퓨젯 사운드가 보이고 날씨가 좋으면 건너편 올림픽 산맥까지 보인다.
도심에서 차로 얼마 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여행 온 기분이 난다.
Gas Works Park도 참 시애틀답다.
Lake Union 바로 옆인데 옛날 가스 공장 시설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놨다.
처음 보면 솔직히 "저 녹슨 걸 왜 안 치웠지?" 싶다.
그런데 잔디밭에 앉아서 호수 건너 시애틀 스카이라인을 보고 있으면 또 그게 그렇게 멋있다.
보트 지나가고 수상비행기 뜨고, 사람들은 돗자리 깔고 누워 있다.
낡은 공장과 호수와 현대적인 빌딩이 한눈에 같이 들어오는 풍경이 참 묘하다.
Capitol Hill 쪽에는 Volunteer Park가 있다.

여기는 또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오래된 나무가 많아서 산책하기 좋고 Seattle Asian Art Museum도 공원 안에 있다.
온실도 있어서 비 오는 날 슬슬 구경하기 좋다.
그런데 시애틀 사진 제대로 한 장 건지고 싶다면 역시 Kerry Park다.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작다.
처음 가면 "이게 다야?" 싶을 정도다.
그런데 거기 서서 바라보는 풍경 하나 때문에 관광객들이 계속 찾아온다.
Space Needle이 앞에 있고 시애틀 다운타운이 펼쳐지고, 운 좋은 날에는 뒤로 레이니어 산까지 보인다.
사진으로 많이 보던 바로 그 시애틀 풍경이다.
그리고 관광객보다 실제 주민들 생활에 더 가까운 곳을 하나 고르라면 나는 Green Lake를 이야기하고 싶다.
호수 주변으로 약 2.8마일 산책로가 있어서 사람이 정말 많다.
아침에는 뛰는 사람, 개 데리고 나온 사람, 유모차 미는 사람, 이어폰 끼고 혼자 걷는 사람까지 별사람이 다 있다.
나도 처음에는 운동한다고 나갔다가 반쯤 돌고 힘들어서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만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또 좋다.
꼭 등산화를 신고 거창하게 자연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커피 한 잔 들고 호숫가 한 바퀴 걷는 것도 시애틀에서는 충분히 자연을 즐기는 생활이다.
그래서 이 도시가 재미있다.
바다가 있고, 호수가 있고, 숲이 있고, 뒤에는 엄청난 산까지 서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도시 생활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마트 갔다 오는 길에도 산이 보이고, 주말에 심심하면 공원에 가고, 조금만 걸으면 물가에 앉아 있을 수 있다.
시애틀 집값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가도 날씨 좋은 날 공원에 나가면 또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이래서 사람들이 여기 사는구나."
비 많이 오는 것까지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자연 하나만큼은 정말 어디 내놔도 자랑할 만한 도시다.


joyfulcloudwalker2001
데이빗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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