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는 이름부터가 독특한데, 1729년 조지 캘버트 볼티모어 남작의 작위를 따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미국 독립 전쟁 이전부터 존재하던 볼티모어는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동시에 '미국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가 태어난 도시이기도 합니다.

1812년 미영 전쟁 당시, 영국의 공격을 막아낸 맥헨리 요새(Fort McHenry)에서 성조기가 끝까지 휘날리며 버텨낸 장면을 보고 프랜시스 스콧 키가 그 감동을 노래로 남겼죠.

미국인들에게는 볼티모어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라 '국가의 상징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바로 '철도 이야기'입니다. 미국 최초의 철도인 볼티모어 & 오하이오 철도(B&O Railroad)가 1830년에 이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철도가 당시 펜실베이니아 탄전으로 연결되면서 볼티모어는 순식간에 산업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조선, 철강,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항구를 통해 수출입이 늘면서 인구가 100만 명을 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19세기 산업화의 상징 같은 도시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1904년에 벌어진 '볼티모어 대화재(Great Baltimore Fire)'는 도시의 역사를 뒤흔든 대참사였습니다.

존 허스트 빌딩에서 시작된 불이 삽시간에 번지며 도시 중심부를 삼켜버렸죠. 워싱턴 D.C., 웨스트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에서 소방차들이 달려왔지만, 어이없게도 각 주의 소화전 규격이 달라 호스를 연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30시간 동안 불길을 잡지 못했고, 결국 570,000㎡의 면적과 1,500여 개의 건물이 불타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부는 공산품 표준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소화전 크기부터 각종 산업 제품의 규격을 통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도시의 비극이 미국 산업 규격화의 계기가 된 셈이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볼티모어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합니다.

1960년대 이후 산업 구조가 바뀌고, 조선과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도심은 점점 낙후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고, 그 빈자리를 빈곤층이 채우면서 치안 문제도 심각해졌습니다. 한때 활기찼던 중심가는 범죄와 빈민가 이미지로 바뀌었고, 도시의 얼굴이 흐려졌습니다. 하지만 볼티모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 정부는 30년에 걸친 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내항(Inner Harbor)'입니다.

항구를 중심으로 쇼핑몰, 레스토랑, 호텔, 해양박물관, 그리고 볼티모어 국립 수족관 같은 대형 관광지가 들어섰습니다. 덕분에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워터프런트 재개발 사례로 꼽히며, 주말이면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북적입니다. 물론 아직도 도시의 중심부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인구의 60% 이상이 흑인이고, 빈부 격차가 크며, 교외로 나간 중산층 이상의 백인층이 시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교외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엘리컷 시티(Ellicott City), 타우슨(Towson), 컬럼비아(Columbia) 같은 지역은 볼티모어 도심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깨끗하고 안전하며 학교 수준도 높습니다. 백인 비율이 57%로 높고, 아시아인 비율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특히 엘리컷 시티에는 한인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어 한국 식당과 마트, 교회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볼티모어가 속한 메릴랜드 주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주라는 점입니다. 수도권 워싱턴 D.C.와 가까워 정부기관 종사자, 의료 전문가, 연구직 종사자들이 많고, 그 덕분에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전국 상위권에 속합니다.

그래서 볼티모어라는 도시를 단순히 '치안이 나쁜 도시'로만 보기에는 편견이 섞여 있습니다.

오래된 항구와 철도의 도시이면서 여전히 재도약을 준비하는 도시. 볼티모어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흥미로운 무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