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의 대형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3년차라서 요령도 생기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요즘 부쩍 '번아웃' 된거같다.

"내가 왜 이러지?" 싶은 순간이 많아졌고 커피를 진하게 내린걸 마셔도 눈은 반쯤 감겨 있다.

이게 다 나만 그런 건 아니더라. 주변 간호사들도 하나같이 "아우, 지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번아웃이 오는 이유? 하나하나 따지자면 끝이 없다.

일단 제일 큰 건 '쉴 틈 없는 스케줄'이다. 근무표는 그냥 퍼즐 게임이다.

낮근무, 밤근무, 중간근무, 퐁당퐁당 바뀌다 보면, 몸이 도대체 무슨 시간대에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이 쉬는 날이었나?" 싶다가도, 알람 보고 '출근'임을 깨닫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또 하나, '쏟아지는 감정 노동'.

환자들은 힘들고 보호자들은 예민하고, 다 이해는 가지만... 솔직히 하루 종일 간호사 호출 소리만 수십 번 들으면, 귀에 에코 생긴다.

거기다 담당 환자들 이름, 약 시간, 투약 스케줄, 의사 오더까지 기억해야 하니 머리는 늘 과부하. 가끔은 내가 인간인지 스케줄봇인지 헷갈린다.

간호 기록도 있다. 요즘은 환자 보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다.

환자 상태 체크하고 나면, 곧바로 EMR에 들어가서 뭐든 기록해야 한다.

"간호사님, 링겔 좀..." 하면 속으론 '기록 마무리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간다. 나도 마음은 급한데 손이 두 개밖에 없으니 어쩌겠나.

그리고 제일 공감되는 건, '나만 바쁜 게 아닌데, 왜 나만 더 바쁜 느낌?' 이다.

분명 같은 시간, 같은 환자 수를 돌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쫓기듯 일하고 있는 걸까?

새로 온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내 일은 자꾸 밀리고, 점심은 눈치보다가 대충 우유 하나 마시고 끝낸 날도 있다.

누가 나보고 점심 뭐 먹었냐고 물으면, "뭐먹었더라?"라고할 판이다.

그렇다고 이 일이 미운 건 아니다. 회복된 환자가 "정말 감사했어요" 한마디 해주면, 그날 힘들었던 거 싹 잊는다.

동료랑 "오늘 진짜 정신없었지?" 하면서 웃는 순간도 위안이 되고. 그냥... 가끔 너무 벅찰 뿐이다.

요즘은 그래서 다들 퇴근길에 치킨 한 마리 맥주 한 캔으로 위로받는다. 어떤 날은 드라이브 스루 커피 한 잔에도 힘이 난다.

간호사 번아웃? 어쩌면 당연한 감정이고, 가끔은 그냥 "내가 너무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힘들면 잠깐 멈춰도 괜찮다. 우리도 환자 돌보듯, 나 자신도 좀 돌보자.

그래야 내일도 유니폼 잘 다려 입고 병원 복도를 다시 걸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