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터레이 캐너리 로우(Cannery Row)를 걸어보신 분이라면 아마 같은 생각을 한 번쯤 하셨을 거예요. 바닷가에 늘어선 이 낡은 함석 건물들은 원래 뭐 하던 곳이었을까 하고요.
지금은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와인 테이스팅 룸이 들어서 있지만, 이 거리는 원래 정어리 통조림 공장들이 줄지어 있던 산업 지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어리가 어느 날 사라졌어요.
오늘은 그 정어리가 사라진 뒤 이 거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서대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알고 걸으면 같은 거리가 꽤 다르게 보이거든요.
먼저 시작부터 볼게요. 캐너리 로우 역사 자료에 따르면 프랭크 부스(Frank Booth)가 몬터레이에 첫 통조림 공장을 연 것이 1902년입니다.
1916년에는 노르웨이 출신의 크누트 호브덴(Knut Hovden)이 호브덴 캐너리를 세웠어요. 그는 통조림 기술을 개선한 혁신가로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이 거리의 공식 이름은 캐너리 로우가 아니었습니다. 오션 뷰 애비뉴(Ocean View Avenue)였죠.
정점은 2차 세계대전 무렵이었어요. 전시 최고 시즌에는 한 해 25만 톤 가까운 정어리를 처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시즌마다 100척이 넘는 선망 어선(purse seiner)이 몬터레이 항구에서 출항했다고 해요. 숫자만 들어도 그 시절 바다가 얼마나 북적였을지 그려지시죠.
그런데 여기서 제가 좀 놀란 대목이 있습니다. 잡힌 정어리의 3분의 2 가까이가 통조림이 아니라 어분, 비료, 기름을 만드는 이른바 reduction 공정으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사람이 먹는 생선이 아니라 가루와 기름이 주력 상품이었던 셈입니다. 캐너리 로우 역사 자료는 이 reduction 의존이 정어리 자원 붕괴에 크게 작용했다고 적고 있어요.
그리고 결과는 아주 빨랐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처리량이 한 시즌 1,000톤 아래로 떨어졌어요. 25만 톤에서 1,000톤이면, 사실상 바다가 텅 빈 거죠.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NOAA 남서부수산과학센터가 공개한 리처드 패리시(Richard Parrish)의 글은 남획, 캘리포니아 해류의 장기적인 수온 하강, 2차 대전, 엘니뇨를 주요 원인으로 꼽아요.
정어리는 원래 수온에 따라 개체 수가 오르내리는 물고기라고 합니다.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시기에 잡는 양을 줄이지 않고 계속 잡은 것이 결정타였다는 설명이 많아요.
제 의견을 조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걸 "자연 탓"으로만 돌리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날씨는 누구도 못 바꾸지만, 얼마나 잡을지는 사람이 정할 수 있었으니까요.
흥미로운 건 이 시기에 이 거리가 문학으로 유명해졌다는 점입니다.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소설 Cannery Row가 1945년에 나왔어요.
스타인벡은 1930년대 초부터 해양생물학자 에드 리케츠(Ed Ricketts)와 이 거리에서 어울렸습니다. 소설 속 Doc가 바로 리케츠를 모델로 한 인물이죠.
공장들이 거의 다 사라진 1958년, 오션 뷰 애비뉴는 공식적으로 캐너리 로우가 됐습니다. 산업이 끝나고 나서야 소설 제목이 거리 이름이 된 거예요.
공장들은 하나씩 문을 닫았습니다. 호브덴 캐너리는 전쟁 중 다른 생선을 통조림으로 만들고 reduction 공장도 함께 돌리면서 버텼어요.
말년에는 오징어 통조림까지 만들며 이웃 공장들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래도 1973년 2월, 캐너리 로우의 마지막 통조림 공장으로 문을 닫았죠.
저는 이 대목이 참 인상적이에요. 다들 정어리만 바라볼 때 사업을 분산한 사람이 가장 오래 버텼다는 것, 요즘 스몰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에게도 그대로 통하는 얘기 아닐까요.
그다음 장면이 이 이야기의 반전입니다. 스탠퍼드 대학 홉킨스 해양연구소가 1967년에 사들였던 이 부지를, 훗날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이 될 단체가 1978년에 매입했어요.
그리고 1984년 10월 20일, 옛 호브덴 캐너리 자리에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이 문을 열었습니다. 지난 20일이 바로 개관 42주년이었어요.
초기 건설비는 데이비드와 루실 패커드(David and Lucile Packard) 부부의 일회성 개인 기부로 마련됐습니다. 정부 사업이 아니라 민간의 결단으로 시작됐다는 점, 저는 이 부분을 꼭 짚고 싶어요.
개관 첫해에만 2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다고 합니다. 정어리 대신 관광객이 이 거리를 먹여 살리기 시작한 거죠.
아쿠아리움은 1916년에 지어진 옛 호브덴 캐너리 건물을 고쳐서 들어섰어요. 물고기를 잡아 가공하던 자리가 물고기를 보여주는 자리가 됐다는 게 묘한 아이러니입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바다가 풍요로웠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잡았고, 정어리가 사라졌고, 거리는 한동안 버려졌다가 문학과 민간 투자로 다시 일어섰어요.
교훈도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하나는 자원에는 끝이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산업이 무너져도 사람과 자본이 움직이면 동네는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캐너리 로우에 가시면 쇼핑만 하지 마시고, 거리 곳곳의 안내판과 옛 공장 건물을 한번 천천히 보세요. 그 낡은 함석벽이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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