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위눌렸다"라는 경험을 한다.
나도 자다가 가위눌림을 느낄 때면 무섭기도 하지만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기묘하게 신비롭다.
몸은 자고 있는데 의식은 깨어 있고, 움직이려 해도 꼼짝할 수 없는것이.... 마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체험이다.
재미있는 건, 한국어의 '가위눌림'이라는 말이다. 사실 가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굳이 '가위'가 붙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잠잘 때 귀신이 가위처럼 날카로운 물건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사람들은 가위눌리면 귀신이 올라탔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동양 문화에서는 가위눌림을 오래도록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겨왔다.
귀신이 눌렀다거나 나쁜 기운이 덮쳤다는 식이다. 불교에서는 잠이라는 무의식적 상태에서 업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내 경우에도 어릴 때는 정말 귀신이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서움에 몸부림치다가도 본능적으로 예수님께 기도했다.
이상하게도 기도를 하면 스르르 풀리듯 잠엣서 깨거나 잠결에 정상적으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알면서도 아직도 가위눌리면 습관처럼 기도부터 나온다.
서양에서는 가위눌림을 Sleep Paralysis, 즉 수면 마비로 부른다.
의학적으로는 사람이 꿈을 꾸는 렘수면(REM) 단계에서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신체가 일부러 마비 상태를 만든다.
그런데 이때 의식만 먼저 깨어나면 몸은 여전히 묶여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각도 자주 일어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검은 그림자'나 '이상한 존재'를 봤다고 보고한다.
과학적으로는 뇌가 깨어나는 과정에서 시각적 신호가 뒤섞이며 생기는 환영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과학적 설명, 다른 하나는 철학적 의미 두가지 경우로 생각한다.
장자는 인간의 삶이 억지로 만든 규칙에서 벗어날 때 자유롭다고 했다.
가위눌림은 몸과 마음이 어긋나면서 순간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힌 경험처럼 느껴진다.
반면 데카르트는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가위눌림은 바로 그 틈새에 선 체험 같다.
정신은 깨어 있지만 육체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상태.
니체의 시선으로 보면 또 다르다. 그는 인간이 사회적 규범과 도덕에 갇혀 힘을 잃는다고 했다.
가위눌림은 그 반대 상황, 즉 본능과 육체가 잠시 봉인되고 의식만 살아남은 순간일 수 있다.
오히려 무의식의 힘과 마주하게 만드는 경험인 셈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가위눌린다. 보통 피곤이 몰릴 때, 혹은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찾아온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만든 상상의 공간이라서 여전히 무섭지만, 동시에 묘하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기도하며 깨어날 때마다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동시에 "내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도 결국 뇌의 전기 신호일 뿐이구나"라는 자각도 따라온다.
물론 아무리 신비롭다 해도 자주 겪으면 피곤하다.
그래서 생활 습관으로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수면 시간, 자세 관리: 옆으로 누워 자는 게 가위눌림을 줄인다는 연구가 있다. 수면 시간이 불규칙할수록 가위눌림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트레스 관리: 심리적 긴장이 높을 때 가위눌림이 더 자주 나타난다. 명상이나 가벼운 운동이 도움이 된다.
카페인·음주 줄이기: 특히 늦은 밤 카페인이나 술은 수면 사이클을 깨뜨려 가위눌림을 유발할 수 있다.
숙면 환경 만들기: 방을 어둡게 하고, 전자기기 사용을 줄이는 것도 효과적이다.
가위눌림은 분명 과학적으로는 뇌의 착오다. 하지만 체험하는 순간만큼은 단순히 '신경계 오류'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동양에서는 귀신의 장난으로, 서양에서는 뇌 과학의 산물로, 철학자들은 몸과 정신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바라봤다.
구글링해보니 놀랍게도 선천적 장님일지라도 꿈속에서도 '듣고 느끼는' 느낌으로 가위에 눌린다고 한다.
장님인 경우 시각정 정보의 부재임에도 불구하고 가위눌림 상황에서 압도적인 촉각적·청각적 위협감으로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가위눌리면 기도한다. 그 순간이 무섭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신비를 엿보는 창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위눌림은 우리에게 "네가 생각하는 현실은 전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작은 체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