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짧은 게 무조건 나쁜 걸까?

살다 보면 "생각이 짧아서 그렇게 되버린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마치 생각이 짧다는 게 곧 어리석고 경솔하다는 뜻인 것처럼 들리지만 내 경험을 비춰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생각이 많아서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동서양 철학을 들여다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동양의 무위자연, 서양의 오컴의 면도날 같은 사상은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프로그래밍의 세계 역시 똑같다.

초보가 짠 코드는 쓸데없이 길고 장황하지만 고수가 짠 코드는 놀랍도록 짧고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인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신입 시절 짰던 코드를 지금 다시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쓸데없는 if문, 중복된 함수, 끝없이 늘어진 조건들. 그땐 "혹시 모를 상황"까지 다 대비하려다 보니 코드가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코드일수록 버그가 많았다.

고수의 코드는 다르다. 간결하다. 마치 시처럼 짧은데, 읽을수록 감탄이 나온다. 거기엔 오랜 경험이 압축돼 있다. 즉, 고수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 고민했기에 불필요한 걸 잘라낼 줄 아는 것이다.

삶도 비슷하다.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다 보면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한다. 반대로 "일단 해보자"라는 단순한 태도가 오히려 빠르게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동양 철학자 장자는 복잡한 논리보다 단순한 흐름을 중시했다. 그는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닮아 있다"고 했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무모해 보이는 태도가 사실은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장자에게 '짧은 생각'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억지로 붙인 조건과 규칙에서 벗어난 자연스러운 자유였다. 그는 나비의 꿈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었고, 복잡한 이론보다 단순한 체험을 더 신뢰했다.

프로그래밍으로 비유하자면, 장자의 철학은 불필요한 코드를 걷어내고 핵심 알고리즘만 남기는 것이다. "돌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면 더 단순할수록 좋다"라는 발상과 닮아 있다.

반면 서양 철학자 니체는 단순함을 곧장 칭송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전통, 도덕, 사회 규범 속에서 지나치게 많은 '조건문'을 붙이고 살아간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하게 무작정 행동하라는 건 아니다. 니체에게 중요한 건, 깊은 사유 끝에 본능과 힘을 회복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초인의 모습은, 무지하거나 생각이 짧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고민과 자기 극복을 통해 남겨진 단순함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깊이 빠져들어라, 그러나 가볍게 춤추듯 행동하라"고 했다.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니체의 단순함은 장자의 그것과 다르다. 장자는 애초에 코드 자체를 간단히 쓰자고 말한다면, 니체는 모든 복잡한 가능성을 다 경험하고 소화한 뒤에, 결국 최적화된 단순함을 구현하는 쪽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장자는 처음부터 단순하게 살라고 한다. 본래 자연은 단순하니, 괜히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 니체는 깊이 들어간 뒤 단순함을 회복하라고 한다. 인간은 복잡함을 피해갈 수 없으니, 오히려 그 속으로 들어가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단순함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

내가 프로그래머로 배운 것도 비슷하다. 초보 때는 장자처럼 "일단 단순하게 짜라"는 교훈이 필요하다. 길고 복잡한 코드는 결국 유지보수도 못 하고 실패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니체처럼 깊은 고민 끝에 더 간결한 코드를 내놓는 힘이 생긴다. 단순함이 단순히 '생각이 짧음'이 아니라, '깊이를 압축한 농축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짧은 생각은 유리할까?

짧은 생각, 즉 단순한 결단은 때로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짧음과 경험에서 걸러낸 짧음은 다르다.

무지는 '경솔한 단순함'이다. → 실패 가능성이 크다.

경험은 '정제된 단순함'이다. → 오히려 최적화된 해답이 된다.

삶에서 유리한 건 후자다. 깊은 생각을 거쳤지만, 불필요한 장황함을 잘라낸 단순함. 프로그래밍에서 최고의 코드는 짧지만 최적화된 코드인 것처럼.

나는 오늘도 코드를 짜며, 철학을 읽으며 같은 교훈을 얻는다.

장자는 "애초에 단순하게 흘러가라"고 말하고, 니체는 "깊이 빠져든 뒤 단순하게 솟구쳐라"고 말한다. 두 길은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수렴한다.

생각이 짧으면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도 실패한다.

중요한 건 단순함의 질이다.

경솔한 짧음이 아닌, 정제된 짧음. 그게 진짜 고수의 길이다.

결국 그길이 인생이라는 거대한 코딩작업에서 가장 멋진 최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