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이스라엘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분쟁 속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분쟁은 단순한 정치, 외교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뿌리는 수천 년간 이어진 민족의 추방, 귀환, 정체성 회복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지탱해온 시오니즘(Zionism)이라는 정신적 기둥 속에 있다.

이 글에서는 시오니즘의 형성과정은 물론,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갈등, 그리고 최근 가장 격화되고 있는 이란과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현실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배경을 풀어보고자 한다.

디아스포라와 민족 정체성의 뿌리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 그리고 기원후 1세기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유대민족은 팔레스타인 땅(성경의 ‘시온’)에서 추방되어 전 세계로 흩어졌다. 이를 우리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부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자신들의 언어(히브리어), 종교(유대교), 관습을 유지하며 ‘시온으로의 귀환’이라는 종교적이면서도 민족적인 꿈을 간직했다. 바로 여기서 시오니즘의 뿌리가 자란다. 시오니즘은 단지 영토를 되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존엄을 되찾겠다”는 선언이었다.

근대 시오니즘의 출현 – 테오도어 헤르츨과 유대 국가

19세기 말 유럽은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반유대주의와 폭동(Pogrom), 차별이 일상이 되면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언론인이었던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은 “유대인은 더 이상 타 민족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독립된 유대 국가 건설을 제안했다.

그는 1896년 『유대 국가(Der Judenstaat)』를 출간했고, 이듬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1차 시오니스트 회의에서 국제적 운동으로 시오니즘이 공식화됐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의 최우선 후보지로 정하고, 본격적인 귀환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대인 귀환, 홀로코스트, 그리고 건국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은 유대 국가 수립을 지지했고, 유럽과 러시아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며 사회 기반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아랍계 주민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는 시오니즘 운동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목숨을 잃은 이 비극은 “유대인만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각인시켰고, 결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시오니즘의 다양성과 민족적 생존 본능

시오니즘은 단일한 이념이 아니다. 정치 시오니즘은 헤르츨의 국가 수립 운동 중심 이념이고, 문화 시오니즘은 아하드 하암이 제시한 ‘정신적 중심’ 건설을 강조했다. 사회주의 시오니즘은 키부츠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삶을 강조했고, 종교 시오니즘은 성경 속 시온의 회복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방향이었다. 리비전 시오니즘은 지금의 리쿠드당, 즉 강경 보수 노선의 기초가 되었다. 이 다양한 시오니즘은 결국 한 가지 공통된 정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다시는 박해받지 않겠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모든 안보정책, 외교전략, 국방 시스템, 국민교육의 기초가 된다.

오늘날 이란과의 대립 – 생존을 건 시오니즘의 연장선

이러한 시오니즘 정신은 이란과의 갈등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 중 하나이며, 시아파 이슬람 혁명 이념에 따라 이스라엘을 ‘중동의 암’으로 규정해왔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거나,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배경에는 단순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이념적 갈등이 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위협에 맞서 ‘예방적 자위권’을 주장하며, 이란 핵시설에 대한 사이버공격(Suxnet), 직접적인 공습, 암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격해왔다. 이 모든 행동 뒤에는 “다시는 우리 민족이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 않겠다”는, 홀로코스트 이후 시오니즘의 민족 생존 본능이 깔려 있다.

시오니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오늘날 시오니즘은 찬반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에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시오니즘이 점령과 분리의 상징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역사와 존엄의 회복, 그리고 민족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로 여겨진다.

시오니즘은 단순히 유대국가 건설의 슬로건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왜 이렇게 예민하고, 강경하고, 단호한가를 설명해주는 정신적 뿌리다.
그리고 그 뿌리는 지금도 이란, 가자지구, 레바논 국경, UN 안보리, 심지어 유대인 디아스포라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긴장과 대화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

그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시오니즘이 이스라엘에서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