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33세, 세 아이의 아빠다. 그런데 그냥 세 명이 아니라 전부 다섯 살 미만이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하루가 전쟁이고, 식사는 제시간에 따듯하게 먹지 못하고, 집 안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꼭 울고 있다.

그런 나에게 요즘 아내가 자꾸 하는 말이 있다.

"애들이 어릴수록 더 많이 보여줘야 해. 캠핑도 가고, 바다도 보여주고, 비행기 타는 경험도 시켜야 정서적으로 건강해."

처음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속이 답답하다.

‘기억도 못 할 텐데 왜 가?’라는 생각

“이 나이에 뭘 기억하겠어. 어차피 사진이나 남기겠지.”

당장 아이들이 돌도 안 지나서 비행기 태우고, 고작 말 배우기 시작한 애를 캠핑장에 데려가서 텐트 치고 밥하고, 낮잠 재우고… 그게 누구한테 좋은 일인가?

아이들? 아닐 수도 있다.

나와 아내? 글쎄. 최소한 나한텐 고행에 가깝다.

게다가 셋을 데리고 어디를 가든 기본 짐은 짐차 한 대 분량이다. 기저귀, 분유, 옷가지, 유모차, 이불, 장난감, 간식, 응급약…

비행기라도 타려면 공항에서만 체력 반 이상 날린다.

그런데 아내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이렇게 투덜대다가도, 아내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의 뇌 발달은 생후 0~5세까지 굉장히 빠르며, 특히 감각 자극과 환경 변화가 인지 발달과 정서 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새로운 풍경,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처음 듣는 소리나 냄새, 다양한 질감 등은 아이의 감각 발달을 자극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아이에게는 ‘세상은 안전하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형성해주는 경험이 된다. 꼭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이의 몸과 뇌는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반응 방식과 감정 조절 능력을 배우게 된다. 즉, 아이 입장에서 보면 기억하든 못하든, 몸으로 느끼고 반응한 경험은 분명히 쌓이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까지가 ‘적절한 여행’인가?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캠핑장에 텐트 치면서 애 셋을 동시에 달래는 상상만 해도 진이 빠진다.

그래서 내가 찾은 현실적인 중간 지점은 이렇다.

짧은 거리, 짧은 일정부터 시작하자. 가까운 공원, 반나절 드라이브, 1박 2일 숙소만 잡고 간단한 일정으로. 아이들은 자극이 너무 강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이 중심이 아니라 ‘가족 중심’ 일정으로.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여행보다, 그냥 가족끼리 웃고 즐기며 부담 없이 경험을 쌓는 방향으로 전환하면 좋다.

하나씩 경험시키자. 캠핑, 비행기, 놀이동산, 자연탐방 등은 한 번에 다 할 필요 없다. 연령대에 따라 아이도, 부모도 즐길 수 있는 걸 선택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아이만 생각하지 말고, 아빠 자신도 챙겨라. 아내와 아이만 좋은 여행이 아니라, 나도 감정적 에너지 방전이 안 되는 선에서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여행도 생각할 수 있다.

무조건 ‘안 가는 것’도, 무조건 ‘가는 것’도 답은 아니다

여행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는 부모가 지치지 않고, 서로 협력하며, ‘즐겁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구조여야 한다.

정서교육을 명분 삼아 억지로 가는 여행은, 오히려 아이에게도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여행’이 아니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억은 못 하겠지만, 우리가 함께한 이 시간의 감정은 아이들 안에 남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힘들지 않게, 조금씩 가자. 둘 다 웃을 수 있는 여행이 되게 하자."

정서교육이라는 말 앞에서 너무 무겁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집 앞 잔디밭에서 돗자리 펴고 아이들과 귤 까먹는 것도,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