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돈 문제에 부딪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갚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는 빚의 성격에 따라 전혀 달라져요.
제가 CPA로 일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카드값을 안 갚는 것과 세금을 체납하는 것, 혹은 병원비를 내지 않는 것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오늘은 빚의 종류별로 어떤 법적·재정적 결과가 따르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신용카드 값
가장 흔한 경우가 바로 신용카드 대금이에요. 카드값을 안 갚으면 처음엔 연체료와 높은 이자가 붙습니다. 보통 카드사들은 30일 정도 지나면 신용평가사에 연체 기록을 보고하기 때문에 신용점수가 크게 떨어져요. 90일 이상 연체가 이어지면 카드사는 채권추심업체(컬렉션 에이전시)에 계정을 넘깁니다. 이때부터 전화, 우편, 문자로 독촉이 들어오기 시작하죠. 최악의 경우 카드사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판결을 얻으면 급여 압류(wage garnishment)나 은행 계좌 압류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다만 파산을 통해 일정 부분 탕감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적 선택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병원비
병원비도 미국에서 큰 부담인데, 안 갚으면 비슷하게 컬렉션으로 넘어갑니다. 의료기관은 보통 90~180일 정도 기다린 뒤 추심회사에 넘겨요. 다만 최근에는 의료비 연체가 신용보고서에 반영되는 방식이 조금 완화되었어요. 소액의 의료비는 신용평가에 포함되지 않거나 일정 기간 이후 삭제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병원비 채무는 개인 파산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병원 측과 협상해 할인이나 장기 분할 납부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무시한다면 결국 법적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카드와 동일합니다.
비즈니스 세금
IRS 세금 문제는 완전히 차원이 달라요. 세금을 안 내면 단순히 신용점수 문제가 아니라 연방정부의 강제 징수권이 개입합니다. IRS는 '세금 유치권(Lien)'을 설정할 수 있고, 계좌를 압류하거나 급여를 직접 가져갈 수 있어요. 심지어 부동산을 팔거나 대출받을 때도 세금 유치권이 우선권을 가지기 때문에 큰 제약이 생깁니다. IRS는 협상도 가능해서 분할납부(Installment Agreement)나 타협적 제안(Offer in Compromise) 제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세금을 무시하고 버티는 건 절대 현명하지 않아요.
벌금 (교통위반, 법원 벌금 등)
벌금은 또 다른 성격을 갖습니다. 정부에서 부과한 벌금을 내지 않으면 체납이 쌓이고, 운전면허 정지나 추가 벌금, 심하면 체포영장이 나올 수도 있어요. 단순 민사채무가 아니라 형사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파산으로 면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교통위반 벌금이나 법원 명령에 따른 벌금은 "무조건 납부해야 하는 의무"에 가까운 거예요.
학자금 융자(Student Loan)
학자금 대출은 오랫동안 파산으로도 쉽게 탕감되지 않는 대표적인 채무였습니다. 연방 학자금 대출은 갚지 않으면 임금 압류, 세금 환급 압류, 심지어 사회보장연금 일부까지 가져갈 수 있어요.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학자금 탕감 프로그램이나 소득 기반 상환제도를 확대했지만, 여전히 무시하면 강력한 추심이 뒤따릅니다. 사립 학자금 대출은 민간 금융기관이 추심하기 때문에 카드빚과 비슷한 절차를 따르지만, 파산 면제 가능성은 낮아요.
SBA 융자
소규모 비즈니스 대출, 즉 SBA Loan을 안 갚는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대부분의 SBA 대출은 개인 보증(Personal Guarantee)이 걸려 있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더라도 대표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갚지 않으면 SBA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추심 절차를 진행할 수 있고, 역시 세금 환급이나 자산 압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SBA EIDL(재난 대출) 같은 경우 팬데믹 때 많이 나갔는데, 이를 갚지 않으면 정부 추심 리스트에 오르게 되고 장기적으로 개인 신용에도 큰 타격을 줍니다.
개인이 빌려준 돈
마지막으로 가장 흔하지만 가장 복잡한 게 '개인 간 대여'입니다.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못 갚으면 법적으로는 민사채무가 되는데, 상대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강제력은 없어요. 하지만 상대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받아내면, 그 판결문을 근거로 급여 압류나 자산 압류가 가능해집니다. 문제는 대부분 이 과정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서 실제로는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개인 간 대출은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돈뿐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미국에서 돈을 안 갚았을 때 결과는 빚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카드나 병원비는 신용점수 하락과 추심, 학자금이나 세금은 정부의 직접적 강제력, 벌금은 법적 제재, SBA 대출은 개인 보증에 따른 책임, 그리고 개인 간 대출은 소송 여부에 달려 있죠.
제가 CPA로서 항상 드리는 조언은 "빚을 무시하지 말라"는 겁니다. 협상을 하든, 분할납부를 하든, 혹은 파산 절차를 고려하든 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을 해야 해요. 무시한다고 없어지는 빚은 없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