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나마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 라는 미국에서 사는데 왜 이렇게 먹고살기가 팍팍할까?
뉴저지 팰팍에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면 집 한 채 장만하고 노후에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얻은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 돌아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각만큼 만만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말하는 '현타'는 '현실 자각 타임'을 줄인 신조어입니다.
보통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갑자기 현실을 깨닫고 허무함이나 씁쓸함을 느끼는 순간을 뜻합니다.
가장 먼저 현타가 오는 순간은 월급을 받을 때입니다.
사무직으로 연봉 8만 달러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제법 괜찮은 수입으로 들릴 겁니다.
그런데 연방 소득세에 주 소득세, 소셜시큐리티, 메디케어, 건강보험료, 401(k)까지 빠지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거기서 렌트비나 모기지, 자동차 보험, 식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습니다.
뉴저지에서 연봉 8만 달러로 가족을 부양하며 여유롭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병원에 갈 때입니다.
보험료를 매달 몇백 달러씩 내는데도 병원에 가면 디덕터블이니 코페이니 하면서 또 돈을 냅니다.
검사 하나 받았는데 몇 주 뒤 청구서가 날아오고, 보험회사에서 처리한 금액과 내가 부담해야 할 금액을 한참 들여다봐야 합니다.
응급실에 한번 다녀왔다가 청구서를 보고 다시 아플 지경이라는 농담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세 번째는 팁 문화입니다.
예전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서비스를 받으면 15~20% 정도 팁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커피 한 잔 사도 팁을 요구합니다.
직접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커피까지 받아 가는데 계산 화면에는 18%, 20%, 25%가 나옵니다. 팁을 안 주자니 괜히 인색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주자니 도대체 무슨 서비스를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번째는 자녀 대학 등록금입니다.
미국에서 아이 키워본 부모들은 공감할 겁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대학에 들어가면 돈 들어가는 단위가 달라집니다.
학비에 기숙사비, 식비까지 합치면 웬만한 사립대학은 1년에 수만 달러가 들어갑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자금 대출을 고민해야 합니다. 부모가 노후자금을 모아야 할 시기에 자녀 대학 등록금부터 걱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섯 번째는 집을 소유하고 있을 때입니다.
뉴저지는 미국에서도 재산세가 높은 주로 유명합니다.
팰팍이나 포트리 근처에 집 한 채 가지고 있으면 재산세가 1년에 1만 달러 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기지를 다 갚으면 집 걱정은 끝날 줄 알았는데 재산세와 보험료, 수리비는 평생 따라다닙니다.내 집인데 매달 렌트비 비슷한 돈이 계속 나가는 기분입니다.
여섯 번째는 자동차 수리비입니다.
정비소에 차를 맡겼다가 견적서를 받으면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브레이크에 타이어, 엔진 관련 부품 몇 개 교체하면 1,500달러에서 2,000달러가 훌쩍 넘어갑니다.
그렇다고 차를 안 탈 수도 없습니다. 뉴저지에서는 뉴욕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동차 없이 생활하기가 불편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현타는 은퇴를 생각할 때입니다.
젊었을 때는 60세쯤 되면 일에서 손을 떼고 여행이나 다니며 살 줄 알았습니다.
막상 그 나이가 가까워지니 소셜시큐리티 연금만으로 생활할 수 있을지, 메디케어로 의료비가 얼마나 해결될지, 모아 놓은 은퇴자금은 충분한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나라는 돈을 벌 기회도 많지만 돈이 나갈 구멍도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국이 싫으냐고 물으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고, 좋은 점도 분명히 많습니다.
젊었을 때 생각했던 아메리칸드림과 중년이 되어 경험하는 미국 생활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게 문제인겁니다.
미국에서 오래 산 중년 남자의 현타는 그렇게 오늘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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