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권이주라는 이름을 들은 건, 한 마라톤 커뮤니티에서였다.
나는 LA 마라톤 대회 준비로 바쁘던 시절이었고, 어느 회원이 "65세에 미국을 달려서 횡단한 한인이 있다"며 링크 하나를 공유했다.
처음엔 “설마...” 싶었다. 나도 꽤 뛰어봤다고 생각하지만, 미국 대륙 전체를 달려서 건넜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거짓뉴스처럼 들렸다.
가만히 차에 앉아서 엘에이 부터 뉴욕까지 운전하는것도 - 평생 한번 해볼까 말까한 - 힘든일로 생각하는 마당에 달려서 그 먼거리를 갔다고?
하지만, 그건 수많은 미국 언론에서 보도되어진 엄연한 사실이었다. 걸은 것도 아니고, 차를 타다 말다 한 것도 아니다. 오직 두 발로, 하루에 평균 50~60km씩 뛰며 미국을 가로질렀다.
2010년, 권이주 선생님은 만 65세의 나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무려 5,600km를 ‘달리기’로 횡단했다. 미국 횡단을 결심한 이유는 권이주 본인이 당뇨병 합병증으로 걷지도 못하고 치아를 모두 잃을 정도로 사경을 헤매다가 불굴의 의지로 달리기를 하면서 당뇨병을 치유했기에 달리기로 당뇨병 홍보대사가 되려고 했다고 한다.
2010년 3월 23일 미 서부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한 권 씨는 이후 95일간 매일 8시간씩 달려 25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미 동부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 도착했다. 권 씨가 달린 거리는 5,600km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미 대륙 횡단 완주자다.
아시안 그리고 한국인 최초 미국 달리기 횡단! 그리고 65세라는 고령 기록 등에서 이 분은 매우 상징적인 기록을 남겼다고 본다.
지금 내가 40대 중반 (권선생님 대륙횡단 성공 나이보다 20살이 젋은 나이다) 이지만 로스안젤레스에서 뉴욕까지 달리기는 단순 체력 도전을 넘어선 기후·교통·건강·경제 상의 중대한 리스크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선 엄격한 훈련, 세심한 지원팀 구성, 충분한 후원이나 자체 자금 조달이 필요하기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놀라운 건, 이 도전을 위해 그는 철저한 준비를 했고, 그 준비과정에는 단지 체력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과의 연결까지 포함됐다는 점이다.
권이주 선생님은 여정을 통해 당뇨병 위험성 홍보, 한반도 평화,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한 메시지를 미국 전역에 알리고자 했다. 유엔본부를 목적지로 삼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이야기를 더 감동적으로 만든 건 미국 내 마라톤 커뮤니티의 반응이었다.
권이주 씨의 계획이 알려지자, 미국 각 지역의 마라톤 동호회들이 구간별로 그와 함께 달리기를 자청했다.
엘에이 캘리포니아부터 뉴욕주까지 권 선생님의 일정을 기다리던 한인 러너들이 있었고, 그들은 마치 성화를 이어받듯 각자 구간을 함께 달리며 “달리는 평화 대장정”에 동참했다.
러닝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스포츠 같지만, 결국 그 여정에는 늘 동료가 함께한다.
누군가는 물을 건네고, 누군가는 옆에서 리듬을 맞추고, 또 어떤 날은 누군가의 발자국이 내 발을 이끈다.
권이주 선생님의 미국 횡단은 단지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건 수많은 러너들의 꿈이 함께 뛴 ‘연대의 기록’이었다.
캘리포니아 햇살 아래 뛰는 그의 뒷모습, 중간 중간 한인 러너들과 인사하는 장면, 달리는 도중 응원하는 트럭 운전수와 손을 흔드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도착지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두 팔을 번쩍 들고 웃던 얼굴.
그건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도달하고 싶은 러너의 상징,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유로 달린 레전드 그 자체였다.
마라톤을 사랑하는 44세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분이 뛰었던 길의 일부라도 내 두 다리로 따라가 볼 수 있기를 꿈꾼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권이주는 '러너의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