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밖에, 차고엔 짐만 가득한 미국 집의 이상한 역설 - Cresskill - 1

저녁 산책을 하다가 괜히 멈춰 선 집이 있었어요. 차고 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안에는 차 대신 상자가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여 있더라고요.

정작 그 집 차 두 대는 드라이브웨이에 나란히 서 있었어요. 낙엽이 앞유리에 몇 장 붙어 있는 채로요.

너무 빤히 보는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돌렸는데, 그 장면이 계속 머리에 남았어요. 차를 위해 만든 방에 차가 없다니, 생각할수록 조금 웃기잖아요.

그래서 집에 와서 노트북을 열고 찾아봤어요. 저만 이상하게 느낀 건지, 아니면 다들 그렇게 사는 건지 궁금해서요.

2022년 공구 브랜드 크래프츠맨이 낸 설문을 보니, 미국 차고의 36%가 너무 어수선해서 차를 아예 못 넣는 상태래요. 세 집 중 한 집이 넘는 셈이에요. 생각보다 훨씬 흔한 풍경이었던 거죠.

2015년 글래디에이터라는 차고 수납 브랜드 조사에서는 네 명 중 한 명이 차고에 차 한 대도 못 넣는다고 답했고요. 둘 다 업체가 한 조사라 조금 걸러 듣긴 해야겠지만, 방향은 비슷하죠.

그런데 집은 계속 차고를 크게 짓고 있어요. 전미주택건설협회가 인구조사국 자료를 분석한 걸 보면, 2024년 새로 완공된 단독주택의 65%가 2대용 차고를 달고 나왔대요.

3대 이상 들어가는 차고도 15%였어요. 차를 세 대나 넣을 공간인데, 거기에도 아마 뭔가 쌓이고 있겠죠.

궁금해서 단어부터 거슬러 올라가 봤어요. 영어 garage는 1902년쯤 처음 쓰였고, 보호하다, 보관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garer에서 왔대요.

그러니까 원래 뜻이 그냥 뭔가를 넣어두는 곳이었던 거예요. 이걸 알고 나니 상자 가득한 차고가 오히려 어원에 충실해 보여서 혼자 웃었어요.

처음엔 차고가 집이랑 떨어져 있었대요. 1930년대까지는 대부분 마차를 두던 창고처럼 뒷마당이나 옆쪽에 따로 서 있는 작은 헛간 모양이었고요.

집에 붙은 차고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시카고의 로비 하우스가 처음으로 자주 꼽혀요. 다만 이게 정말 최초인지, 연도는 언제로 봐야 하는지는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요.

붙어 있는 차고가 흔해진 건 2차대전 이후 교외 주택 붐 때부터래요. 필지는 작아지고 집집마다 차는 늘면서, 차고가 자연스럽게 집의 한 부분이 된 거죠.

여기까지 읽고 나니 질문이 바뀌었어요. 왜 차를 밖에 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넣어둘 게 많냐로요.

미국 집에는 지하실도 있고 다락도 있는데, 그래도 모자라나 봐요. 업계 자료를 보면 미국의 셀프 스토리지 시설이 5만 곳을 넘는대요.

창고를 따로 빌리는 가구도 열 집 중 한 집이 넘는다고 하고요. 숫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와, 하고 작게 소리를 냈어요. 집에 차고까지 있는데 창고를 또 빌린다는 거니까요.

차고에 쌓인 걸 상상해 보면 대충 그려져요. 크리스마스 장식 상자, 아이가 크면서 못 쓰게 된 자전거, 언젠가 고칠 거라던 의자 같은 것들이요.

그게 다 쓸모없는 물건은 아니에요. 버리기엔 마음이 쓰이고, 쓰기엔 자리가 없는 물건들이 갈 곳이 차고뿐인 거죠.

그래서 차고는 어쩌면 집의 미루기 방 같아요.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잠깐 맡겨 두는 곳이요. 집 안은 깔끔하게 두고 고민은 문 하나 너머로 옮겨 두는 거죠.

그 잠깐이 몇 년이 되는 게 문제지만요. 저도 방 한구석에 일 년째 안 푼 상자가 있어서 남 얘기만은 아니에요.

한인 집들은 또 조금 다른 풍경이에요. 친구네 놀러 가면 차고 한쪽에 김치냉장고나 커다란 냉동고를 둔 집을 꽤 자주 봤거든요.

쌀 포대랑 고추장 통, 김장 때 쓰는 큰 대야도 거기 있고요. 차고가 반은 창고, 반은 부엌 뒷방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차가 밖에 있는 게 꼭 정리를 못 해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차보다 더 지켜야 하는 걸 안에 두기로 한 선택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겨울이 문제예요. 눈 온 아침에 손 시려가며 앞유리 얼음을 긁다 보면 그 선택이 살짝 후회되긴 하겠죠.

여름엔 또 뜨거운 햇볕에 차 안이 달궈지고요. 그래도 다들 차고 문을 열 생각은 잘 안 하는 걸 보면, 안에 있는 게 그만큼 소중한가 봐요.

그래도 차고를 비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건 알 것 같아요. 물건 하나하나에 그때의 내가 조금씩 묻어 있으니까요.

저라면 한 번에 다 비우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한 계절에 상자 하나씩, 그 정도면 마음도 덜 무겁고요.

상자를 열면 버릴 것, 남길 것, 누군가에게 줄 것으로 나눠 보는 거예요. 동네 기부함에 가져다주면 내 미루기 방의 물건이 다른 집에서는 바로 쓰일 수도 있잖아요.

그날 이후로 산책할 때 차고 문을 조금 더 유심히 봐요.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상자들이 그 집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요.

차는 밖에서 비를 맞고, 차고 안에서는 추억이 비를 피하고 있어요. 이상한 역설인데, 저는 왠지 그게 좀 귀엽게 느껴져요.

오늘은 저도 방 구석에 일 년째 앉아 있던 그 상자를 열어볼까 해요. 너무 거창하게 말고, 구름처럼 가볍게 딱 하나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