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 넘게 뉴욕지역에서 과일 도매업을 했다. 새벽마다 시장에 나가 과일을 싣고 도매상들과 거래하며 지낸 세월을 돌이켜보면 고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계절 따라 움직이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흐름이 있는 장사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슬슬 체력도 달리고 거래처들도 정리되면서, "이제는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과일 사업을 접고, 오랜 꿈이었던 꽃농장을 구입했다. 장미, 튤립, 백합을 키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처음엔 흙을 만지는 일도 좋았고, 온실 안에 가득 핀 꽃들을 보면 마음도 따뜻해졌다. ‘이렇게 은퇴도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가 있는 뉴저지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화훼 생산지다. 2023년 기준으로 전국 매출 5위, 총 매출 약 3억 달러가 넘는 규모다. 화훼와 원예용 묘목을 합치면 4천 에이커 이상을 경작하고 있는 꽤 큰 시장이다. 하지만 그런 수치만 보고 들어온 나 같은 사람에게, 진짜 중요한 현실은 따로 있었다.

우선 꽃은 1년 내내 팔리는 게 아니다. 발렌타인데이, 어버이날, 졸업 시즌 같은 특정 시기엔 분명 대목이지만, 나머지 시기에는 매출이 확 꺾인다. 반면, 과일 도매는 사계절 품목이 바뀌며 일정한 매출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가 된다.

또 하나, 수입산 꽃의 영향이 크다. 뉴저지 꽃시장은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에서 들어오는 저렴한 수입 꽃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건 품질 문제가 아니라 단가의 문제다. 국내에서 정성껏 키운 꽃이 제값을 못 받을 때면, 애써 가꾼 온실을 바라보며 허탈해진다.

인건비와 물류비가 높은 것도 큰 부담이다. 꽃은 예쁜 만큼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데, 그에 맞는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운반도 일반 상품처럼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냉장 상태 유지가 필수다. 나처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부담이다.

무엇보다 마케팅 역량이 중요하다. 도매로만 팔던 과일과 달리, 꽃은 직접 소비자와 연결되지 않으면 팔기가 어렵다. SNS, 웹사이트, 온라인 예약 같은 디지털 방식이 익숙하지 않으면 손님을 끌어오기도 쉽지 않다. 이젠 꽃도 ‘잘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 팔 줄 아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뉴저지에도 성공적인 꽃농장이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 Wall Township에 있는 Barlow’s Flower Farm은 온실 기술과 자체 브랜드를 통해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고, Neshanic Stationb.a.r.e. flower farm은 특수 품종을 키워 고급 시장을 공략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런 농장들은 단순 판매를 넘어, 체험, 구독형 CSA 모델, SNS 마케팅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나도 요즘 들어 꽃 체험 농장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사실, 30년간 과일만 팔던 내가 SNS에 글을 올리고, 이벤트를 기획하며 손님을 끌어야 한다는 건 꽤 낯설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길이 꽃으로 은퇴를 마무리하고 싶은 내 마음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배우고 또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란 그냥 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는 걸 요즘 많이 느낀다.

꽃은 가만히 있어도 예쁘지만, 그걸 키우는 삶은 생각보다 치열하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의 꽃 한 송이는 피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직, 내가 뿌릴 수 있는 씨앗은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