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 중순이 넘어가니 프렌치 쿼터 골목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비스킷 한 판 구워 놓고 커피를 마시다가, 손님 한 분이 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어요.
왜 이 동네는 사람을 땅에 안 묻고 돌집 안에 모시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거의 다 같은 걸 물어보시더군요.
관광 책자에는 늘 같은 답이 적혀 있습니다. 지하수위가 높아서 땅을 파면 물이 차오르고, 큰비가 오면 관이 떠오른다는 설명이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하면 이 도시를 절반만 아는 셈입니다.
이야기는 17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큰불과 홍수, 황열병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당시 쓰던 세인트 피터 거리 묘지가 금세 가득 차 버렸습니다.
그래서 스페인 식민 정부가 1789년에 당시 도시 경계 바로 바깥에 새 묘지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세인트 루이스 1번 묘지입니다.
재미있는 건 초기에는 여기서도 땅에 묻는 매장이 많았을 거라는 점입니다. 1803년에 시 조례로 지상 안치를 의무화하고 나서야 지금 우리가 아는 풍경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물론 조례가 생겼다고 하루아침에 바뀐 건 아닙니다. 단속은 느슨했고, 1816년 매카티 크레바스 홍수 때는 묘지가 한동안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그럼 물 때문만이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도시를 세운 사람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건너왔고, 그쪽에서는 벽처럼 쌓은 납골 벽감이나 가족 묘실이 원래 익숙한 방식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물이 땅 위로 올라가게 만들었고, 고향의 풍습이 그 모양을 정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저는 이쪽 설명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게다가 주변 늪지를 메우고 물을 빼면서 지하수위는 지난 200여 년 동안 꽤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방식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요.
실용에서 시작한 일이 결국 문화가 된 겁니다. 음식이나 음악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가족 묘실 안을 들여다보면 구조가 꽤 영리합니다. 선반처럼 칸이 위아래로 나뉘어 있고, 관을 위 칸에 모신 다음 벽돌과 회반죽으로 입구를 봉합니다.
남부의 뜨겁고 습한 날씨가 돌집 안을 오븐처럼 데웁니다. 그래서 오래 두면 아주 느린 화장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들 설명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일 년 하고 하루입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유해를 아래쪽으로 옮기고 같은 칸에 다음 가족을 모십니다.
이 기간이 어디서 왔는지는 설명이 갈립니다. 한 해 동안의 애도 기간을 지키는 관습이라는 말도 있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신앙과 연결하는 말도 있습니다.
한 칸짜리 무덤 하나에 몇 대가 함께 들어가는 셈이니, 땅이 좁은 도시에 이만한 지혜도 없습니다. 비스킷 반죽 한 덩이를 몇 번이고 다시 밀어 쓰는 남부 할머니들 손맛이 생각나더군요.
이렇게 돌집들이 골목처럼 늘어서 있으니 사람들이 이곳을 죽은 자의 도시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실제로 걸어 보면 작은 지붕과 철제 울타리, 번지수 같은 이름판까지 정말 동네 하나를 축소해 놓은 모양입니다.
이 작은 도시에도 유명한 주민들이 있습니다. 부두교 여사제로 알려진 마리 라보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묘실이 있는데, 사람들이 소원을 빈다며 X 표시를 그려 대는 통에 골치를 앓았지요.
인종 분리를 합법화한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의 당사자 호머 플레시도 이곳 가족 묘실에 잠들어 있습니다. 무덤 하나하나가 미국 역사책의 한 페이지인 셈입니다.
영화 쪽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69년 영화 이지 라이더의 그 유명한 환각 장면이 바로 이 묘지에서 찍혔는데, 대교구 허락도 없이 촬영해서 교회 측이 크게 불쾌해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 극장에서 그 장면을 보고 다들 수군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고, 실제로 대교구는 교육용이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 가면 눈에 확 띄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 두었다는 높이 9피트짜리 하얀 피라미드 묘인데, 아직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동네 사람들 반응은 반반입니다. 오래된 묘지에 저런 걸 세우느냐는 쪽도 있고, 그것도 이 도시다운 괴짜 기질이라며 웃어넘기는 쪽도 있지요.
한 가지 꼭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세인트 루이스 1번 묘지는 2015년부터 혼자 들어갈 수 없고, 가톨릭 대교구에 등록된 가이드와 함께 가야 합니다.
훼손이 너무 심해져서 내린 결정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아쉬웠지만, 남의 집안 무덤에 낙서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묘지 문화는 재즈 장례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묘지로 갈 때는 브라스 밴드가 느린 찬송을 연주하고, 돌아올 때는 세컨드 라인이 흥겨운 곡으로 바꿔 거리를 춤추며 걷지요.
슬픔을 땅에 묻지 않고 땅 위에 모셔 두고, 그 앞에서 다시 음악을 연주하는 도시입니다. 저는 이것만큼 뉴올리언스를 잘 설명하는 장면을 아직 못 봤습니다.
곧 11월 1일 만성절이 오면 가족들이 묘실을 쓸고 하얗게 칠을 새로 하러 모여듭니다. 한국 사람들이 추석에 벌초하러 가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혹시 이 가을에 이 도시에 오실 일이 있으면 가이드 투어로 한 번 걸어 보시길 권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따끈한 비스킷 한 조각 드시면, 죽은 자의 도시가 생각보다 따뜻한 곳이었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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