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어디서 살고 싶으냐는 질문을 하면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 대부분은 따뜻한 곳이나 살기 편한 지역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쪽에서 은퇴하고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다들 왜 그렇게 추운 곳에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제게 알래스카는 단순히 추운 땅이 아닙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고 인생의 마지막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래스카를 은퇴지로 떠올리게 된 이유는 자연입니다.

여기 알래스카를 컴퓨터나 TV 화면으로 보는 풍경과 실제로 살아가며 마주하는 자연은 전혀 다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으로 보이는 설산과 빙하, 때로는 야생동물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상상했습니다. 인공적인 소음 대신 바람과 숲의 소리를 들으며 사는 삶을 원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고독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관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알래스카는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이 아닌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곳에서는 역할과 직함을 내려놓고,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낭만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알래스카는 철저한 준비 없이는 버티기 힘든 곳입니다.

겨울 기온은 극단적으로 낮아지고, 단열과 난방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집 구조와 에너지 시스템부터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생활비와 식량 문제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물가는 비싸고 신선 식품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직접 채소를 기르거나 저장 식품을 활용하는 생활 방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준비 과정 자체가 은퇴 이후의 또 다른 삶의 리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과 의료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완전히 고립된 오지보다는,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 인근이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은퇴는 모험이지만 무모함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는 알래스카의 하루는 단순합니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계절 속에서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겨울에는 긴 밤 동안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다 오로라가 하늘을 채우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은퇴는 편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은퇴가 반드시 멈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선택이라면, 약간의 불편함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눈을 치우고, 추위에 적응하고,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삶은 또 다른 형태의 충만함일 수 있습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정답을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이 향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설령 눈 덮인 땅일지라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알래스카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 단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