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꿈에서 오래전에 떠나보낸 강아지가 나옵니다. 꿈속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꼬리를 흔드는데, 깨고 나면 한동안 멍해지죠. 그런 아침이면 이상하게 Hartsdale Pet Cemetery 언덕길이 떠오릅니다.
Westchester의 조용한 언덕에 자리한 이곳은 흔히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반려동물 묘지로 불립니다. 처음 지나가다 봤을 때는 그냥 작은 공원인 줄 알았어요.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이 전부 강아지와 고양이 이름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습니다.
이 묘지는 계획해서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1896년, 슬픔에 빠진 손님 한 명이었죠. 뉴욕시에서 동물병원을 하던 수의사 Samuel Johnson 박사에게 키우던 개를 잃은 손님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문제는 당시 뉴욕시 안에서는 동물을 땅에 묻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던 개를 어디에 보내야 할지 막막했겠죠. 그때 Johnson 박사가 Hartsdale에 있던 자기 사과 과수원에 묻으라고 내어줬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하면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사과나무 아래 작은 무덤 하나.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라 한 사람의 호의에서 출발했다는 게 좋아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자였던 박사의 친구가 이 일을 기사로 쓰면서 소문이 퍼졌거든요. 그러자 자기 반려동물도 거기 묻어 달라는 부탁이 박사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박사는 과수원 일부를 아예 반려동물 묘지로 떼어 줬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던 거죠. 개를 그냥 가축이 아니라 가족으로 보는 시선이 그때 이미 있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방식도 꽤 흥미롭습니다. 주인이 맨해튼 박사 사무실로 반려동물을 데려오면 관에 넣어 Grand Central로 옮기고, 거기서 기차를 태워 Hartsdale까지 보냈다고 해요. 작은 관을 안고 기차에 오르는 주인을 상상해 보면, 영화 한 장면 같지 않나요?
묘지는 1914년에 Hartsdale Canine Cemetery라는 이름으로 정식 법인이 됐습니다. 이름에 canine, 그러니까 개가 들어가 있었던 거죠. 나중에 온갖 동물이 묻히게 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온갖 동물입니다. 고양이, 새, 토끼는 기본이고요. 1912년에는 러시아 공주가 사자 새끼를 이곳에 묻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묘지 이야기는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현실인데 어딘가 꿈처럼 비현실적이에요.
제가 제일 오래 서 있던 곳은 War Dog Memorial입니다. 1923년에 세워진 기념비로, 1차 세계대전에서 복무한 군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화강암 받침 위에 청동 셰퍼드가 올라가 있어요.
이 기념비는 국가가 아니라 묘지 이용자들이 돈을 모아서 세웠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사라진 개들을 위해 평범한 주인들이 지갑을 연 거죠. 그 사실이 비석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매년 6월이면 이 기념비 앞에서 추모식이 열립니다. 요즘은 군견뿐 아니라 사람 곁에서 일한 여러 봉사견을 함께 기린다고 하네요.
2012년에는 이 묘지가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에 올랐습니다. 사람 묘지가 아니라 반려동물 묘지가 그 목록에 들어갔다는 게 놀라웠어요. 동물을 묻는 문화 자체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인정받은 겁니다.
등재 자료를 보면 관리인 오두막, 영묘, 군견 기념비, 언덕 지형까지 함께 보존 대상으로 묶여 있습니다. 비석 몇 개가 아니라 풍경 전체가 문화유산이라는 얘기죠.
또 하나 신기한 건 사람도 이곳에 묻힌다는 사실입니다. 반려동물 곁에 자기 유해를 함께 묻은 주인들이 적지 않다고 해요. 죽어서도 같이 있고 싶었던 마음, 저는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비석 문구를 하나씩 읽다 보면 시대가 보입니다. 오래된 비석은 점잖고 짧고, 최근 것일수록 사진도 붙어 있고 말투도 다정해요.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도 세월 따라 변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저한테는 솔직히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개를 위해 비석을 세운다는 게 좀 과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묘지의 시작을 알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결국 이곳은 갈 곳 없는 슬픔을 위해 생긴 공간입니다. 1896년의 그 손님도,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법이나 관습이 미처 챙기지 못한 마음을 누군가의 과수원이 받아 준 거죠.
요즘은 반려동물 장례 방식이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화장도 흔하고, 집 마당에 묻는 집도 있고요. 그래도 Hartsdale 같은 곳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저는 반갑습니다.
혹시 들러 보실 분이 있다면, 관광지처럼 소란스럽게 둘러보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지금도 실제로 장례가 치러지는 곳이니까요. 사진은 조용히, 비석은 밟지 않게 다니면 충분합니다.
가을에 가면 특히 좋습니다. 언덕을 덮은 낙엽 사이로 작은 비석들이 드문드문 보이는데, 꼭 오래된 동화책 삽화 같아요.
저는 이 묘지가 슬픈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곳에 가깝죠. 백 년 넘은 비석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이름이 또렷하게 남아 있으니까요.
오늘 밤에도 그 강아지가 꿈에 나왔으면 좋겠네요. 이번에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같이 낮잠을 자는 꿈이면 더 좋겠고요. 깨고 나서 덜 허전하도록요.
참고로 기념식 일정이나 방문 가능 시간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기 전에 묘지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조용한 오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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