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 중순이 되면 동네 집 앞마다 호박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해요. 저녁 산책길에 그 호박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느슨해지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 단골 세탁소 앞에서 마주친 이웃 어르신이 그러시더라고요. 예전엔 이맘때가 되면 밤새 사이렌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데빌스 나이트', 악마의 밤이라는 이름이 다시 떠올랐어요. 핼러윈 전날 밤을 부르던 디트로이트의 옛 별명입니다.
처음부터 불장난은 아니었대요. 시작은 나무에 휴지를 걸고 남의 집에 달걀을 던지는 정도의 짓궂은 장난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핼러윈 전야 장난은 1930년대부터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 철없는 장난이 수십 년 뒤에는 진짜 불을 지르는 방화로 번진 겁니다.
정점은 1984년이었어요.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 동안 무려 810건의 화재가 신고됐습니다.
이 숫자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고서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처음 읽었을 때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릅니다.
흔히 하룻밤 800건이라고들 말하는데, 정확히는 사흘 동안의 집계예요. 그래도 사흘에 810건이면 소방관들 입장에선 지옥이었을 거예요.
왜 하필 이 도시였을까요? 자동차 산업이 기울면서 실업이 늘고, 사람이 떠난 빈집이 동네마다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아요.
불을 붙여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 빈집이 곳곳에 있었던 거죠. 도시가 비어가는 속도와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물론 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어요. 바로 다음 해인 1985년부터 소방과 경찰 순찰을 늘리고, 화재 감시 자료를 바탕으로 대응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1986년에는 아예 미성년자 통행금지까지 도입했어요. 핼러윈 즈음 밤에는 아이들이 함부로 밖에 못 나가게 한 거예요.
효과가 있었는지 1990년대 초에는 화재 건수가 크게 줄었다고 해요. 다들 이제 끝났나 싶었겠죠.
사실 이런 이야기는 늘 여기서 방심이 끼어들어요. 꿈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같은 꿈 속으로 떨어지는 것처럼요.
그런데 1994년, 사흘간 화재가 다시 354건으로 치솟았습니다. 방심하는 순간 바로 돌아온 셈이에요.
그래서 데니스 아처 당시 시장이 들고나온 게 '엔젤스 나이트', 천사의 밤이었어요. 이름부터 정반대로 뒤집어 버린 거죠.
핵심은 사람이었어요. 주민들이 직접 차를 몰고 동네를 돌며 빈집과 차량을 지켰습니다.
이 이름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동네 빈집 정리 운동을 하던 주민이었다는 기록도 있어요. 관청이 아니라 골목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게 마음에 듭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기 차 지붕에 주황색 경광등을 달고, 무전기나 휴대폰으로 상황실과 연락했다고 해요. 1996년 AP 보도에는 자원봉사자가 2만 6천 명이었다고 나옵니다.
휴대용 기름통 판매를 막는 조치와 엄격한 통금도 함께 붙었어요. 그 결과 1995년에는 화재가 158건으로 줄었습니다.
354건에서 158건이면 절반이 넘게 빠진 거예요. 저는 이 대목에서 숫자보다 그 주황색 불빛들이 더 오래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상상해 보면 좀 뭉클해요. 입김이 나오는 차가운 시월 밤, 라디오를 낮게 틀어놓고 빈집 앞에 차를 세워둔 채 커피를 홀짝이던 이웃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 차 안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모타운이었을까요, 디트로이트 테크노였을까요. 괜히 그런 쓸데없는 장면을 혼자 떠올리며 웃어 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화재는 계속 줄었어요. 해마다 핼러윈이 지나면 지역 신문이 올해는 몇 건이었는지 짚어주곤 했는데, 그 숫자가 점점 시시해지기 시작한 거죠.
시시해졌다는 게 이렇게 반가운 일일 수도 있구나 싶어요. 결국 2017년에 마이크 더건 시장이 엔젤스 나이트라는 이름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대신 붙은 이름이 '핼러윈 인 더 디(Halloween in the D)'예요. 지킬 밤이 아니라 즐길 밤으로 바꾼 겁니다.
물론 빈집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지금도 동네를 걷다 보면 창문이 판자로 막힌 집이 드문드문 보이거든요.
다만 이 도시가 그 밤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건 분명해 보여요. 경계하는 밤에서 아이들 사탕 들고 다니는 밤으로요.
저는 이 이야기가 결국 이웃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경찰 몇 명 늘린 것보다, 내 동네 앞을 내가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판을 바꿨으니까요.
요즘 우리 한인 이웃들끼리도 핼러윈이면 아이들 사탕 바구니를 같이 채우곤 하잖아요. 그 소소한 장면도 어쩌면 그 밤들 위에 쌓인 거라고 봐요.
올해 핼러윈 전날 밤에는 늘 끼고 다니던 이어폰을 빼고 동네 소리를 좀 들어보려고요. 사이렌 대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악마의 밤이 천사의 밤을 거쳐 그냥 핼러윈이 되기까지 30년 넘게 걸렸어요. 느리지만, 이 도시는 그렇게 꿈을 꾸듯 조금씩 바뀌어 왔나 봅니다.

은하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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