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에서 워싱턴 D.C.까지는 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거리감이 오히려 하루 나들이 코스로 딱 좋아요. 지난주 주말, 날씨도 포근하고 하늘이 맑아서 오랜만에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을 다녀왔습니다.

D.C. 도심에 있는 미국 미술 박물관은 미국 예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건 '이곳은 단순히 그림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미국의 시간을 기록하는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유럽 미술관처럼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대신 현실적인 사람들의 삶, 변화하는 도시,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들이 많습니다.

특히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풍경화 코너가 인상 깊었어요. 당시 화가들이 그려낸 광활한 평원, 빛바랜 산맥, 그리고 서부 개척 시대의 장면들은 마치 '이 나라가 이렇게 시작됐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더군요. 프레더릭 근처의 시골 풍경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괜히 더 마음이 갔어요.

현대미술 섹션에서는 팝아트와 추상화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설명을 읽고 보니 하나하나가 당시 사회 분위기와 연결돼 있더라고요. 특히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이 주는 도시적 감각과 색감의 과감함은 프레더릭의 고즈넉한 거리와는 완전히 반대의 매력이었어요.

그런 대비가 신기했죠. 2층으로 올라가면 Renwick Gallery에서 이어지는 공예 예술 작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유리, 목재, 섬유로 만든 조형물들이 있었는데, 디테일이 정말 놀라웠어요. 어떤 작품은 나무를 얇게 깎아 종이처럼 만든 뒤 조명을 비춰 그림자를 예술로 만들어냈는데,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관람료가 무료라는 점이에요.

입장할 때 티켓 줄에 설 필요도 없고, 그냥 들어가면 됩니다. 대신 방문객들이 자발적으로 도네이션을 하는데, 저도 작은 금액이지만 감사의 마음으로 기부함에 넣고 왔어요. 이런 문화 인프라가 미국의 매력이죠. 도시 한복판에서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관람을 마치고 나와 근처 커피숍에서 잠시 쉬었는데, 창밖으로는 예술을 본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비슷했어요.

뭔가 차분하고 여유로운 느낌. 아마 다들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색으로 본다'는 경험을 한 것 같았습니다. 프레더릭으로 돌아오는 길엔 고속도로 옆으로 석양이 지고 있었는데, 낮에 본 풍경화 속 장면과 겹쳐 보이더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은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순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요.

프레더릭에 산다면 이렇게 하루쯤 미술관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해졌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밝았어요. 다음엔 Smithsonian National Portrait Gallery에도 가볼까 싶습니다.

같은 건물 안에 있고, 미국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니까요. 그런 예술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게 프레더릭 생활의 또 하나의 행복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