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 속에서 와이오밍주는 유난히 독특한 색깔을 가진 땅입니다.

흔히들 서부세대 하면 캘리포니아, 네바다, 아리조나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진정한 서부 개척 역사는 이곳에 있습니다.

미국 지도에서 보면 네모난 형태의 주 경계 안에 광활한 평야, 거친 산맥, 그리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초원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면적은 넓지만 인구는 60만 명 남짓으로, 미국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와이오밍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넓은 하늘 아래 고요한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먼저 원주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쇼쇼니족, 아라파호족, 크로우족 등 여러 부족이 이 땅을 따라 이동하며 사냥과 무역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걸었던 길과 사냥터는 훗날 철도 노선과 마차길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 서부 확장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후 유럽계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생기고, 철도역이 세워지고, 그 주변으로 상점과 목장이 늘어났습니다.

19세기 후반 와이오밍은 목축업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며 소 떼를 몰던 카우보이들의 풍경은 지금도 와이오밍의 상징처럼 남아 있습니다. 소와 말, 그리고 먼지 자욱한 대지 위를 달리던 개척민들의 이야기가 수많은 서부영화와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1868년에 영토로 조직된 후, 1890년 7월 10일 정식으로 미국의 44번째 주로 승격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이곳을 "서부의 마지막 개척지"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와이오밍이 단순한 서부 개척지로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이 주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지역이었습니다. 1869년, 와이오밍 영토 의회는 "모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로 인해 이곳은 '평등의 주(Equality State)'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비롯해 수많은 간헐천, 협곡, 호수, 온천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자연보호 개념이 태동한 땅이기도 합니다. 석탄, 천연가스, 광물 등이 풍부해 철도 시대에는 주요 수송 거점이었고, 지금은 풍력과 재생에너지 개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와이오밍은 미국에서도 인구가 매우 적은 주 중 하나로 도시화보다는 여유로운 농촌적 삶이 중심입니다. 아시아계나 한국계 인구는 수백 명 정도로 전체 인구 중 극히 적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와이오밍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서로 반가워 인사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한인들이 주로 샤이엔이나 라럼이 같은 대학도시 근처에 거주하며, 대부분이 소규모 비즈니스나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와이오밍은 미국 서부의 영혼을 가장 오래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개척의 흔적, 평등의 정신,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