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레건 트레일을 따라가던 개척자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구간이 바로 와이오밍이었습니다.
미주리에서 출발해 네브래스카의 평원을 건너면 드디어 '서부로 들어간다'는 상징처럼 로키산맥의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나는데, 그때부터가 진짜 고비였죠. 끝없는 초원과 황량한 언덕, 돌투성이 산길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매일이 전쟁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낮에는 태양이 작렬하고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서 낮에는 땀으로 젖고, 밤에는 얼어붙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와이오밍 지역은 바람이 심하고 물이 귀했습니다. '세이지브러시(Sagebrush)'라고 불리는 향기 짙은 관목들이 자라지만, 그 아래는 바짝 마른 흙과 돌뿐이라서 물 한 모금 구하기가 어려웠죠. 강이 있더라도 물살이 거세거나 깊어서 마차가 떠내려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 노스 플랫 강(North Platte River)과 스위트워터 강(Sweetwater River)을 건널 때가 위험했는데, 물살에 마차바퀴가 휘말려서 짐을 다 잃거나 가족이 강물에 휩쓸려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큰 시련은 바로 고개였습니다. 와이오밍 중부의 '사우스 패스(South Pass)'는 해발 약 2,000미터가 넘는 로키산맥을 넘는 주요 통로였어요.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길이 막혀버리기 때문에 시기를 잘못 잡으면 그대로 산속에 갇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 고개를 넘다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금만 더 가면 오레건이야" 하며 서로를 다독이며 걸었죠.
바람이 심해 텐트가 날아가고, 모닥불조차 제대로 피우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식량이 떨어지면 버팔로나 토끼, 심지어는 버려진 마차에서 남은 밀가루 가루를 긁어 모아 죽을 끓여 먹기도 했어요. 아이들은 배고픔보다 추위를 더 무서워했고, 어른들은 매일 밤마다 다음 날의 길을 걱정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건 가족 때문이었죠. 새로운 땅에서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사람들은 그 거친 와이오밍을 건넜습니다.
지금 와이오밍을 달리다 보면, 드넓은 초원과 외로운 언덕 사이로 '오레건 트레일'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지만, 그 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눈물이 스며 있죠. 지금은 자동차로 몇 시간 만에 지나가는 길이지만, 그 옛날엔 인생을 걸고 걸어야 했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와이오밍의 바람은 아직도 그들의 숨결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던 그들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들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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