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66 100주년, 그 이름은 스프링필드 전보에서 나왔다 - Springfield - 1

미국 고속도로 이름 중에 노래 제목이 된 길이 몇이나 될까요. 루트66 하면 누구나 흥얼거리는 그 멜로디부터 떠오르실 겁니다.

그런데 이 길에 66이라는 숫자가 붙은 장소가 따로 있다는 걸 아는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시카고도 LA도 아닌, 미주리 오자크 지역의 스프링필드입니다.

올해 2026년은 그 이름이 지어진 지 꼭 100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숫자 하나가 어떻게 한 시대의 상징이 됐는지 차근차근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는 1925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연방 차원에서 고속도로에 번호를 매기는 작업이 진행되던 때였고, 시카고에서 LA까지 가는 길에는 원래 60번이 배정될 예정이었습니다.

미국 번호 체계에서 끝자리 0은 동서를 가로지르는 간선도로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프리미엄 번호였던 셈이지요.

여기에 제동을 건 사람이 켄터키 주지사 윌리엄 J. 필즈였습니다. 자기 주에도 0번 대륙횡단 도로가 지나가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거든요.

결국 60번은 버지니아에서 켄터키를 거쳐 가는 노선으로 넘어갔습니다. 시카고에서 LA로 가는 길에는 62번이 대신 제안됐습니다.

이 결정이 못마땅했던 사람이 오클라호마 고속도로위원장 사이러스 에이버리입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줄다리기 끝에, 1926년 4월 30일 그는 스프링필드에 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미주리 주 고속도로 기술자 B. H. 피프마이어, 그리고 스프링필드 사업가 존 T. 우드러프가 함께했습니다. 장소는 세인트루이스 스트리트와 제퍼슨 애비뉴가 만나는 모퉁이의 콜로니얼 호텔이었습니다.

우드러프는 프리스코 철도의 변호사로 일하던 지역 유력 인사였습니다. 길이 사람과 돈을 끌어온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던 사람이었지요.

세 사람은 아직 아무 데도 배정되지 않은 번호 목록을 들여다보다가 66이 비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는 데 다들 공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날 콜로니얼 호텔에서 워싱턴으로 전보가 날아갔습니다. 핵심은 "We prefer Sixty-Six to Sixty-Two", 그러니까 62보다 66이 낫다는 한 줄이었습니다.

전보에는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같은 다른 주들도 66을 받아들이면 그쪽으로 가겠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혼자 밀어붙인 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구한 겁니다.

이 대목이 저는 참 미국답다고 느낍니다. 정부가 위에서 정해 내려준 이름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협상해서 얻어낸 이름이라는 점에서요.

그해 11월 11일, 미국 고속도로 번호 체계가 최종 승인되면서 루트66이라는 이름이 공식이 됐습니다. 스프링필드가 지금 루트66의 탄생지라는 이름을 쓰는 근거가 바로 이 전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전보를 보낸 콜로니얼 호텔 건물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철거됐기 때문입니다.

대신 올해 그 자리에 버스플레이스 플라자, 말 그대로 탄생지 광장이 생겼습니다. 정확히 100년 뒤인 2026년 4월 30일 오후에 헌정식이 열렸습니다.

그 주간에 스프링필드에서는 전국 단위의 100주년 킥오프 행사가 열렸습니다. NBC 투데이쇼가 아침 생방송을 현장에서 진행했고, 그레이트 서던 뱅크 아레나에서는 대형 콘서트도 있었습니다.

연방고속도로청장과 미주리 부지사가 헌정식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한 도시의 모퉁이에서 있었던 일이 이제 국가적인 기념일이 된 셈이지요.

그런데 이 길이 공식적으로 영원했던 건 아닙니다. 주간고속도로가 하나둘 생기면서 루트66은 조금씩 밀려났습니다.

1984년 애리조나 윌리엄스가 I-40에 의해 우회된 마지막 마을이 됐습니다. 그리고 1985년 6월 27일, 미국 주 고속도로 교통공무원 협회가 루트66을 연방 고속도로 체계에서 공식적으로 해제했습니다.

지도에서 지워진 길이 이렇게 사랑받는다는 게 재밌지 않습니까. 이름이 사라진 뒤에 오히려 사람들이 그 이름을 지키려고 나섰다는 점이 저는 인상 깊습니다.

이민 와서 처음 장거리 운전을 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갈색 Historic Route 66 표지판을 보고 일부러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관광지 표지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 숫자 뒤에 주지사의 고집과 지역 사업가들의 협상이 숨어 있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지요.

저는 이 이야기에서 배울 점이 하나 있다고 봅니다. 큰 시스템은 결국 작은 동네 사람들이 끈질기게 목소리를 낼 때 움직인다는 겁니다.

우리 한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시청 공청회든 학교 위원회든, 가서 의견을 내는 사람이 이름을 남깁니다.

올가을 오자크 쪽으로 드라이브 계획이 있으시다면 다운타운 탄생지 광장에 한번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100년 전 전보 한 장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직접 서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저라면 I-44 대신 옛 66번 구간을 골라 천천히 가보겠습니다. 빨리 가는 길보다 이름이 있는 길이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