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에서 잘나갔던 담배 버지니아 슬림(Virginia Slims). 담배 이름 부터 그냥 멋 좀 부린 영어 단어 조합이 아니었죠.

'슬림(Slim)'이란 말 그대로 가늘고 길다는 뜻인데, 그게 1968년 당시엔 완전 신세계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담배는 죄다 남자들 물건이었잖아요. 두껍고, 묵직하고, 손가락에 끼운 채 허공에 연기 뿜는 게 남성의 상징이던 시절에, 필립모리스가 느닷없이 여성용 담배를 내놓은 거예요.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가는 몸통, 그게 당시 여성들에게는 마치 '나도 나답게 살 수 있다'는 선언 같았죠.

그 유명한 광고 문구 "You've come a long way, baby." 

"아가씨, 참 먼 길을 왔군요." 이 말 한마디로 세상이 뒤집혔습니다.

여성해방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이 카피는 시대의 공기를 딱 짚어냈어요.

광고 속 여성들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운동도 하고, 남자와 대등하게 서 있었죠.

거기서 담배는 단순히 연기를 피우는 물건이 아니라 '자유와 자립'의 상징으로 그려졌습니다. 남자들 담배 틈바구니 속에서 '우린 달라'라고 외치던 그 이미지, 그때는 진짜 멋있었어요.


제품도 그에 걸맞게 세심했죠. 필터에는 립스틱 자국이 덜 남게 코팅이 되어 있었고, 케이스는 화장품처럼 고급스럽게 만들었어요. 로고 'VS'도 패션 브랜드 로고처럼 세련됐고요.

그때 버지니아 슬림을 손에 든 여자는 그냥 흡연자가 아니라, 하나의 '트렌드 아이콘'이었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어쩔 수 없네요. 한때 시대를 대표하던 그 버지니아 슬림도 지금은 힘을 많이 잃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여성 흡연율이 줄면서 브랜드 영향력도 쪼그라들었죠.

2009년 통계로 보면 시장 점유율이 고작 1.8%라네요.

예전엔 "You've come a long way, baby."라며 세상에 큰소리치던 담배가, 이제는 그냥 오래된 추억으로 남았죠.

그래도 버지니아 슬림은 단순한 담배가 아니었어요.

버지니아라는 이름으로 담배 산업의 전통을 품고, '슬림'이라는 단어로 여성의 독립과 자신감을 담은 제품이었으니까요.

여기서 '버지니아(Virginia)'는 실제로 미국 버지니아주를 가리키며, 이 지역이 오랜 세월 동안 담배 산업의 중심지였다는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Richmond는 한때 미국 담배 산업의 심장이라 불릴 만큼 담배 공장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버지니아'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담배의 고장'이라는 상징이 되었고, 필립모리스가 신제품 브랜드를 만들 때 지역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해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