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토니오에서 2년째 살고 있는데 좀처럼 다운타운에 갈일이 없다보니까 아예 다운타운을 안가게 되더군요.

그래서 마음 먹고 다운타운산안토니오 리버워크(River Walk)에 다녀왔습니다. 리버워크를 '관광객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가보니까 괜히 유명한 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오히려 오랜만에 갔더니 도시 한가운데 흐르는 강이 이렇게 정돈돼 있고, 물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멋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서울에 있는 청계천이 이걸 카피한건가?

차는 다운타운 근처 공영주차장에 세우고 (유료) 햇살은 뜨거웠지만, 리버워크는 강 옆으로 나무도 많고 그늘도 꽤 있어서 한여름에도 걷기 괜찮더라고요. 뭔가 도심 속인데도 휴가 나온 기분이랄까. 점심은 Casa Rio라는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먹었습니다.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쫙 펼쳐진 테라스가 유명하죠. 타코랑 엔칠라다 콤보 시켰는데, 솔직히 음식 맛보다 분위기가 8할이에요. 강가에서 보트 구경하면서 시원한 마가리타 한 잔 마시니 '아 이게 바로 주말이다' 싶더라고요.


밥 먹고는 그냥 강 따라 천천히 걸었어요. 곳곳에 벤치도 많고, 공연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구경거리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어떤 구간은 벽에 벽화처럼 그림도 있고, 작은 폭포처럼 물 떨어지는 곳도 있는데 그런 데서 잠깐 쉬면 도시에서 잠시 벗어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리버워크를 따라 걷다 보면 라 빌리타(La Villita)라고 하는 예술인 거리도 있어요. 예쁜 핸드메이드 샵들, 도자기 공방, 작은 갤러리 같은 게 모여 있는 공간인데요. 특별한 걸 사지 않아도 윈도우 쇼핑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더라고요. 저는 그날 소이캔들 하나 샀어요. 향 맡아보니까 집에 두면 리버워크 냄새가 날 것 같아서요.

걸어다니다 보니 보트 지나가는 거가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관광객들 눈 반짝이며 강 설명 듣는 모습 보면 산안토니오 매력을 잊고 산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해가 살짝 기울 즈음, 강가에 앉아 쉬다보니 잔잔하게 음악도 들리고 주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마치 배경음처럼 좋았고요.

리버워크는 딱히 뭔가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에요. 그냥 걷고, 보고, 앉아 있고, 그러면서 하루가 훌쩍 가버리는 그런 공간이죠. 돈 많이 안 들고, 스트레스는 확 내려가고, 뭔가 나도 '삶을 좀 즐긴다'는 기분을 주는 곳.

혹시 산안토니오 사시면서 요즘 어디 갈 데 없다고 느끼신다면, 리버워크 한번 다시 걸어보세요.

마치 처음 온 관광객처럼. 낯익은 풍경도 다시 보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