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대신 뜨개질, 요즘 뜨는 아날로그 취미 입문기 - Ann Arbor - 1

지난주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서 폰을 봤는데, 정신 차려 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어요. 쇼츠 몇 개만 보려던 거였는데 말이죠.

Screen time 알림이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을 넘었다고 뜨는 순간, 솔직히 좀 현타가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가을엔 뭔가 손으로 하는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고른 게 뜨개질입니다. 처음엔 저도 웃었어요, 운동이나 경기 보는 게 취미인 사람이 무슨 뜨개질이냐고요.

근데 알아보니 이게 저만의 충동은 아니더라고요. 요즘 미국 젊은 층 사이에서 이른바 grandma hobbies가 다시 뜨고 있다는 기사가 꽤 많습니다.

공예용품 체인 Michaels가 올해 3월 10일에 낸 2026 트렌드 리포트를 보면 수치가 꽤 놀랍습니다. 뜨개질, 코바늘, 자수 같은 아날로그 취미 검색량이 6개월 사이 136% 늘었다고 해요.

같은 리포트에서 털실 관련 액세서리 판매도 전년 대비 40% 늘었다고 했습니다. 올해를 아예 아날로그 시대의 Year of Creative Living이라고 이름 붙였더라고요.

청소년과 20대 초반 쪽 데이터도 있습니다. 리서치 회사 YPulse 조사에서는 13세에서 24세 응답자의 70%가 오프라인 활동을 예전보다 더 찾고 있다고 답했어요.

ThriftBooks 의뢰로 Talker Research가 한 설문에서도 Z세대의 63%가 화면 보는 시간을 줄이려고 해봤다고 했습니다. 다들 비슷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겠죠.

다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이 숫자들 상당수가 공예용품 회사나 서점 같은 업계 쪽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그러니까 방향은 맞아도 정확한 규모는 좀 걸러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유행이라고 해서 모두가 폰을 내려놓은 건 아니니까요.

재밌는 건 이 흐름이 SNS에서 시작됐다는 점이에요. 인플루언서들이 뜨개 영상을 올리면서 관심이 커졌고, 팬데믹 이후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와요.

폰에서 시작된 유행이 폰을 내려놓게 만든다니, 좀 아이러니하죠. 저도 결국 알고리즘이 띄워준 영상 보고 마음먹은 거니까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왜 하필 뜨개질일까요? 제가 직접 몇 주 해보니 이유가 대충 보였습니다.

첫째, 손이 바빠서 폰을 못 만집니다. 바늘 두 개를 쥐고 있으면 알림이 와도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강제 디톡스라고 할까요.

둘째, 결과물이 눈에 보입니다. 하루 종일 이메일만 처리하다 보면 내가 뭘 했나 싶은데, 한 줄 한 줄 길어지는 목도리를 보면 묘하게 성취감이 있어요.

셋째, 실패해도 다시 풀면 됩니다. 회사 일은 한번 틀리면 되돌리기 어려운데, 뜨개질은 실만 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생각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줘요.

입문 과정은 이랬어요. 처음 주말에 동네 털실 가게에 갔는데, 직원분이 초보면 굵은 실이랑 굵은 바늘부터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얇은 실로 시작하면 코가 잘 안 보여서 금방 지친대요. 실제로 굵은 실에 밝은 색으로 하니까 코가 또렷하게 보여서 세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첫 프로젝트는 무조건 목도리 같은 직선 작품을 추천받았어요. 겉뜨기 하나만 알아도 끝까지 갈 수 있거든요.

유튜브로 혼자 배울 수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영상은 결국 또 화면이잖아요. 저는 손 모양도 계속 이상하고 해서 결국 사람한테 직접 배우는 쪽을 택했어요.

찾아보니 동네 공공도서관에서도 재료까지 포함된 뜨개질 워크숍을 연 적이 있더라고요. 털실 가게 중에는 초보반이나 knitalong 모임을 여는 곳도 있고요.

Meetup 같은 앱에도 매주 모여서 뜨개질하는 그룹이 꽤 있습니다. 일정은 자주 바뀌니까 가기 전에 꼭 홈페이지나 전화로 확인하세요.

처음 모임에 갔을 때 남자는 저 하나였어요. 좀 어색했는데, 옆자리 할머니 한 분이 "You dropped a stitch, honey" 하시면서 코 빠진 걸 같이 고쳐주셨고, 그 뒤로 금방 말을 트게 됐습니다.

이게 의외의 수확이었어요. 미국 와서 회사 동료 말고 동네 사람들이랑 이렇게 편하게 대화한 게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다음 주엔 뭐 뜰 거냐는 질문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네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예쁜 실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돈이 생각보다 금방 나가요.

그리고 손목이랑 어깨가 은근히 뻐근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오래 앉아 있게 되니까 폰 볼 때 자세랑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30분마다 한 번씩 일어나서 스트레칭하는 걸 습관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라면 처음엔 실 한두 타래랑 바늘 한 쌍만 사겠어요. 장비부터 풀세트로 갖추는 건 몇 달 해보고, 정말 내 취미다 싶을 때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제 첫 목도리는 절반쯤 왔어요. 코가 들쭉날쭉해서 누구 선물로는 못 주겠지만, 첫눈 오기 전에 완성해서 직접 두르고 출근하는 게 목표입니다.

무엇보다 저녁 시간이 달라졌어요. 폰 대신 바늘을 잡는 한 시간이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쉬게 해줍니다.

디지털 디톡스를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번 겨울엔 손에 뭔가 하나 쥐어보는 것, 저는 그걸로 충분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