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엔 가끔 내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한국에서 길만 넓고 영어쓰는 외국인 동네에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CPA FIRM에 출근해서 영어로 이메일 쓰고, 세금 문제로 머리 싸매고, 손님 만나러 외근나가면 주차 단속 때문에 괜히 불안해하면서도, 하루 끝에 나를 진정시키는 뜨거운 솥뚜껑이다. 나는 뉴저지 버티기 달인이고 '철판구이 중독자'다.
특히 팰팍에 있는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한식당에 들어가 고기글 굽는 그 순간, 세상 모든 근심이 바로 고기 기름에 튀겨져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자리에 앉으면 이미 내 마음은 고기 앞에서 무릎 꿇어 있다. 메뉴판은 사실 눈으로만 훑고, 마음속으론 이미 주문이 끝나 있다. "주물럭, 삼겹살 주시구요. 김치도 같이 익혀 먹을 거니까 넉넉히 주세요."
불판에 고기를 올리는 직원 손을 보며 눈은 이미 반달모양이 되어간다. 양념 주물럭이 철판 위에 떨어지는 그 소리, '치익~' 소리 듣자마자 오늘 하루 스트레스가 증발한다. 불판 위에 빨간 양념이 기름과 만나 튀는 순간, 고기는 이미 반쯤 익기도 전에 내 기분을 다 구워버린다.
삼겹살은 또 어떤가. 뚝뚝 떨어지는 기름이 고소하게 타며 살짝 연기가 올라오는데, 여기서부터 정신줄 놓기 시작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디인들 어떠랴, 이 마성의 고기기름 타는 냄새 앞에서 오늘도 힘들었다는 생각에 빨리먹고 집에가서 쉬자라는 생각에 눈빛이 촉촉해진다.
김치는 절대 그냥 먹지 않는다. 김치를 꼭 구워야 한다. 처음에는 살짝 올려두고, 주물럭 양념이 옆에서 같이 흘러들어와 묻어야 한다. 양념 김치를 뒤집으면 바삭함과 촉촉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찰나가 있다. 그때 삼겹살 한 점을 올려 함께 먹으면, 입안에서 '고기·기름·불·김치' 네 가지가 동시에 춤을 춘다.

열심히 일해서 뭐하나 싶다가도 한 입 먹는 순간 갑자기 모든 고민이 일시정지된다. 이것이 내 힐링 방식이다.
누군가는 요가를 하고, 누군가는 와인을 마시지만 나는 김치를 구운다. 김치를 구워서 밥 한공기 싹싹 비우면 제대로 힐링이 되는것 같다.
옆 테이블을 훔쳐보는 재미도 있다. 어떤 사람은 김치를 아예 태우듯 바삭하게 굽고, 어떤 사람은 고기보다 콩나물과 마늘을 더 올린다.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판 철학을 펼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걸 보며 몰래 따라 해본다. '저렇게 먹으면 뭐가 다르지?' 이런 궁금증이 머리를 채우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덜하다. 미국 회사에서 머리 싸매고 보고서 쓰다가 이런 쓸데없이 행복한 고민 하나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얼굴에는 살짝 기름 냄새가 배어 있고, 머리카락이 고기 향을 품고 있다. 예전엔 이 냄새가 싫었는데, 이젠 묘하게 든든하다.
찬 바람에 옷에베인 불판 냄새를 털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드슨강 바람이 불어오고 눈앞엔 뉴욕 스카이라인이 반짝인다. 비싼 월세에 치이고, 이민 생활에 피곤하고, 나이 들수록 책임만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철판 하나 앞에서 이렇게 단순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미국 살기 어렵다면서도, 이런 작은 순간 때문에 또 버텨지는 거다.
다음 주에도 분명 나는 다시 그 솥뚜껑 앞에 앉아 있을 거다. 주물럭과 삼겹살 주문서 앞에서 고민하는 척하면서 사실 둘 다 다시 시킬 거고, 김치는 꼭 구워 먹을 거다.
그 뜨거운 한 입 덕분에 또 한 주를 살아낼 힘을 얻을 테니까. 고기 굽고, 김치 뒤집으며, 삶도 다시 구워내는 것.
그렇게 또 한 주, 나는 잘 먹고 잘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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