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e 호수 마리나에 처음 갔던 날 해 질 무렵이라 하늘이 서서히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마리나 앞에는 요트들이 고요하게 줄 맞춰 서 있었어요. 바닷가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는데, 물결이 아주 잔잔하게 부서지면서 요트 밑에 반짝반짝 빛을 흘리고, 돛줄이 살짝살짝 흔들리며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똑딱똑딱 들리더라구요.

바람은 차지도 덥지도 않게 딱 좋았고, 호숫물에서는 은근한 냄새가 올라왔는데 바다처럼 세지 않고 담백해서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함이 없었어요.

무엇보다 눈을 못 떼게 했던 건 석양이었어요. 하늘 한쪽이 분홍빛, 주황빛, 보랏빛이 섞이더니 물 위로 천천히 퍼져 나갔어요. 요트 흰 몸통에 그 색이 닿으면서 마치 필터를 씌운 사진처럼 보였죠. 호수 끝자락에 깔린 금빛 물결은 잔잔히 흔들리면서 마리나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줬어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미 그 시간이 충분한 여행이 된 느낌. 옆에 지나가던 가족들도 조용히 서서 하늘을 보는데, 다들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했어요. 아이들은 방파제 근처에서 돌멩이를 던지는데 퐁, 하고 떨어지며 퍼지는 물결마저 노을 색을 머금고 있었어요.

벤치에 앉아 커피 한 모금 마시는데, 요트 사이로 천천히 배 한 척이 들어오더니 줄을 묶고 사람들끼리 웃으며 대화를 하더라구요.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어요. 손에 잡히는 배경이 아니라,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장면이라는 게 딱 느껴지는 순간이었죠. 해가 조금씩 더 내려가자 요트 위 난간등이 하나둘 켜지고, 물 위에는 주황빛 대신 은빛 반사가 깔렸어요.

저는 그대로 호숫가 끝까지 천천히 걸어 내려갔어요. 나무 데크가 길게 이어져 있고, 발 아래서 살짝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조차 편안했어요.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석양은 서서히 사라지고, 대신 남은 잔광이 요트 마스트를 따라 선처럼 떨어져 물결 위에 길을 만들었어요.

사람들은 삼삼오오 걸으며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앉아 있었어요. 여행자도 있었고 현지 사람도 있었겠지만, 다들 같은 속도로 호흡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급한 마음도, 소음도, 흔한 도시의 긴장도 없었어요. Erie 호수는 그렇게 낯선 사람들도 같은 하늘 아래서 조용히 석양을 나누게 만드는 힘이 있더라구요.

노을이 완전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어둑해진 뒤에도 저는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처음엔 그냥 요트가 정박한 풍경이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빛이 바뀌고 바람이 바뀌며 풍경이 달라졌어요.

그 변화 하나하나가 작품 같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색이 계속 변해가며 여운을 남겼어요. 그래서 지금도 Erie 마리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요트 그 자체보다도, 그 위를 감싸던 석양의 색이에요.

아마 언젠가 다시 가도 또다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될 것 같아요.